君の孤独な瞳にもう一度、僕を探すことができたら
너의 고독한 눈동자에 다시 한번 내게 비치게 된다면
そのとき、僕は、君を。
그 때 나는 너를...
이 편지글을 읽을 때마다 항상 생각하지만, 차암 두서가 없다.
갑자기, '하지만, 그러나, 그럼함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폭포수처럼 쏟아져가는,
문장 하나 자체가 문단 하나 같을 정도의 내용전개.
그건 아마도 주인공이 오랜만에 만나게되는 여주인공에게 어떻게 형체를 이루어낼 수 없는 그 마음 앞에,
두서없이 이야기하게 되는 전형적인 남성의 모양새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 글의 마지막만큼, 그 혼잡한 감정이 다 사그라들게되는 말이 또 있을까.
"너의 고독한 눈동자에 다시 한번 내게 비치게 된다면 그 때 나는 너를..."이라니,
오히려 앞의 어지러운 서술이, 이 마지막 대목을 더욱 빛나게 한다.
앞부분글을 다시 음미하니,
기다림이란 건 기다린다고 기다려지는 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기다림이란 건, 윗 글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추후에 기다려졌구나 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게 아닐까.
어제 용산우체국을 지나는데, 그 비오는 와중에 서로가 멱살을 부여잡고 싸우는 커플을 봤다.
비오는 와중에 무슨 일이야,....그러면서 상황을 살피는데,
아무래도 남자가 많이 화가 나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여자 입장에서 남자 옷 귀퉁이를 부여잡고 애틋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걸 보고 있자니,
대강 상황을 알 것 같았다.
윗 노래와 상반배치되는 상황,
이별의 시점에 들어선 연인이라면 절대 겪고 싶지 않은 상황이라 할 수 있는데,
사실, 백마디 말보다도 그 여자 분의 그 애틋한 눈빛이 그 남성분을 잡고있는 멱살과는 상반된,
"제발..."의 메세지를 담고있는 듯해서, 스쳐지나가면서 본 내 마음도 다 절절해졌다.
찰나였지만, 그 여성분이 부럽기도 했다.
이별의 순간. 자기 자신을 저렇게 허물어버리고, 그 사랑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란 생각에 이 노래 가사와 비슷하게 이별의 정리에 가치부여를 하며 준비했던 나로서는
그 분의 그런 모습이 다소 부럽기도 했다.
물론, 알고 있다.
그 상황에서, 사랑을 붙잡는 이가 이야기하는 진심이,
사랑을 떠나려하는 자에겐 얼마나 걸리적거리며 혐오스러운 일인지.
아마 세상의 많은 사람이 굳이 경험을 하지 않더라도,
함께였던 사람들에게는, 상대의 그런 불편함을 파악하는 게 딱히 어려운 일이 아니란 것을 안다.
물론, 그 결정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도, 괴로웠는지도.
그래서, "진심이라면", 혹은 "정말 사랑했다면"이란 단서 앞에,
세상은 "잘 안녕하는 것","깔끔히 정리해주는 것"을 사랑의 가장 좋은 종착역으로 정의내리는 듯하다.
그래, 일반적으로 생각해보았을 때,
진실한 사랑에서 빠질 수 없는 "희생"이란 측면과
그 관계 안에서 언제나 형성되었을 "배려"라는 측면을 한데 합친, 가장 좋은 방법이다.
비록 관계는 마치 칼로 자르듯, 그대로 끝나지만, 그 과정 와중은 사랑의 연속이라는, 이상적인 종착점.
그러나, 그런 이별을 결정한 순간에 다들 잠시 잊는 듯하다. 그 과정이 얼마나 괴로울지에 대해.
이건 사랑인 거니까. 사랑의 연속이니까. 끝이 아닌거니까.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그 내면에는 감정적으로 더 이상 불거지지않으려는 자기보호와
현실을 직시한 이성적인 면모가 있다는 걸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남겨진 자의 빈곤한 마음이, 메아리처럼 울려퍼진 그 울음섞인 자신의 목소리가,
부메랑되어 그 완벽한 추억의 비겁한 단면을 후갈길 것이라곤 상상조차 못하는 듯하다.
사랑의 단절을 통한 그 이별 앞에,
그런 아픔의 시간이 굉장히 짧거나, 상처도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진실로 사랑했기에 후회할 것은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시간이 차차 흘러감에 따라 당사자들은 조금씩 깨닫게 된다.
자신의 비겁함에서 이 모든게 파생되었을 수도 있다는 걸.
그래서, 자기 자신이 이런 상황을 연출해낸 행위가 얼마나 가증스러운지, 역겨운 일인지,
(실제 그렇지 않더라도,) 조금씩 깨달아가며, 내 자신의 이기심에 가슴을 치게되는 모양새를 갖춘다.
상대가 어떤 잘못을 했다한들,
이별의 단초 및 시작점이 상대였다한들,
자기 자신의 자의식과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
'어리석다'란 표현이 가장 적합하다.
'고생 사서 한다'는 표현도 이에 가깝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연인들은 이런 깔끔한 이별을 가장 좋은 모양새로 생각한다.
뭐랄까. 진정 사랑을 했던 관계 종료의 정답이라고나 할까.
그래, 어차피 무기력해질 꺼, 조금이나마 아름다워 보이게 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지.
그래서, 관계 안에 목적의식이 아닌 사랑 그 자체로의 감정이 있었다면
이별 앞에 그렇게 깔끔해진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니,
혹시나 이 글을 보는 사람 중에 그런 이별을 준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과정을 이미 해본 사람으로서 조언을 하겠는데,
입에 맴도는 수신처를 잃어버린 감정의 메시지를 애써 참아,
차후에 돌아올 자책감을 직면하지 말고,
위의 여성분처럼, 살포시 멱살이라도 잡아주어 그 애틋한 마음을 표현하길 추천한다.
그 이별 와중에 얻게 된 그 상실감과 많은 분노를 자신에게 돌리지 않기를...
이 노래를 들으며 더한 상실감에 늘어지지 않기를,...바란다.
사족.
하지만, 돌이켜보면, 상대의 마음을 위하는 사랑이 아니었다면
그런 이별을 할 사고 자체가 생겨날 수가 없는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순간을 벗어나 상대방을 사랑했기에,
그 과정 와중에 상대방에게 갖은 조소와 비웃음을 머금을 지언정,
그보다 더한 조소를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내뱉아,
다른 만남들에 어떤 한계를 갖게될지언정,
이를 악물며 그 메세지에 대한 응답을 준비해낼 수 밖에 없는 게 아닐까......
Babe, baby, baby, I'm Gonna Leave You.
I said baby, you know I'm gonna leave you.
I'll leave you when the summertime,
Leave you when the summer comes a-rollin'
Leave you when the summer comes along.
Baby, baby, I don't wanna leave you,
I ain't jokin' woman, I got to ramble.
Oh, yeah, baby, baby, I believin',
We really got to ramble.
I can hear it callin' me the way it used to do,
I can hear it callin' me back home!
Babe...I'm gonna leave you
Oh, baby, you know, I've really got to leave you
Oh I can hear it callin 'me
I said don't you hear it callin' me the way it used to do?
I know I never never never gonna leave your babe
But I got to go away from this place,
I've got to quit you, yeah
Baby, ooh don't you hear it callin' me?
Woman, woman, I know, I know
It feels good to have you back again
And I know that one day baby, it's really gonna grow, yes it is.
We gonna go walkin' through the park every day.
Come what may, every day
It was really, really good.
You made me happy every single day.
But now... I've got to go away!
Baby, baby, baby, baby
That's when it's callin' me
I said that's when it's callin' me back home...
여러 사정으로 인해 고양이를 실제로 키우시지 못하는
"고양이 결핍 증후군자"들(이상 고결증)을 위한 책을 발견했습니다!
두드러기가 나거나, 식은땀을 유발할 정도의 고결증은 아니지만,
대뇌에서의 엔돌핀 증가로, 하악 구조 벌어지고,
발음구조 뭉개질 정도의 증세를 가지고 있는 저로서는,
어느 중고서점 가판대에서 이걸 우연히 발견한 순간,
연신, 이거 뭐얔ㅋㅋㅋㅋ앜ㅋㅋ 이러면서,
지금 제 입에 고이는 게 침인지, 엔돌핀인지 분간이 안 되는 상황까지 이르렀답니다.ㅋㅎ
고양이와 관련된 매체들을 책에 부착시켜,
아이들에게 고양이와의 접근성을 기르기위한, 혹은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수준의 이 책이
이리도 성인의 고결증을 자극하다니요.
이 어찌 고양이를 가까이하길 원하나 할 수없는 안타까운 애묘인들에게 어찌 좋은 선물이 아닐수 있겠습니까.
전 이 책을 보는 순간, 고양이를 보는 눈빛이
"호부호형을 차마 하지못하는 눈빛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는 홍길동의 애틋한 시선"을 연상케하던
어떤 선배님이 생각나더군요,
외모는 멀쩡하게 보이나 고결증을 심히 앓아,
배우자와 화목한 가정을 꾸리시고, 서로 간에 사랑하지만,
배우자의 알레르기 비염만큼은 사랑하기 어렵다고 씁쓸해할 "것만 같은"
선배님을 생각하니, 그저 눈물만 나더이다.
그래서, 이런 변형된 형태(이하 변태)라도 위로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변태를 선배님께 선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답니다.
이 변태가 맘에 들으셔야 할텐데,
이 변태적인 선물이 선배님의 그런 고결증을 위로하길 바라면서,
이 변태를 준비했습니다.
이 변태가 맘에 드시길 바래요. (응?)ㅋㅋㅋ
주변에 고양이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있으시다면,
이런 선물은 어떨까요?
아마도,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좋은 방법이 될 것 같습니다.
아, 물론, 이 책의 원래목표인 아이들 정서순화에도 도움이 되는게 먼저겠지만요.ㅋㅎ
※ 사용 시 주의.
심한 고결증자는 혼자있을 때,
책 내의 바구니를 손톱으로 긁으며 촉감을 느끼면서,(어, 이거 좀 변태같다...)
"야, 나와, (책에서) 빨리 나오란 말야, 왜 안 나오는 거야"하며
차후 본인이 생각해도 민망한 자폐끼를 양산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