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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5. 16. 18:48 Review/글에 관한
르꼬르뷔지에:작품과계획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 대학교재 > 건축술
지은이 르 꼬르뷔제 (미건사, 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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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코르뷔지에(Charles-Edouard Jeanneret) / 건축가
출생 1887년 10월 00일
신체
팬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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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가끔,
만사 하기 싫어질 때,
이 책을 읽다보면, (사실 읽는다는 표현은 안 맞는다. '보다보면'이란 표현이 더 어울리지.)
머릿 속에 크리에이티브가 꽉 들어차는 걸 느낄 수 있다.

남들 따라하는 건 소모적이며 쓸데없는 일이라고 배워온 가정교육의 여파 속에서도
그의 크리에이티브가 형성되어가는 과정을 훔쳐보며 얻는 감동은 도무지 부정할 수가 없더라.
개인적으로 고양받아 "나도, 나도"하는 생각이 마음 속에서 물결쳤던 기억이 있다.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을 위해 이 책을 저술했고,
찬디가르, 유니떼 다바따시옹 등의 건축에 대한 설계과정을 담았다.
그러나, 건축의 'ㄱ'자도 모른다한들,
르 꼬르뷔지에의 건축사적 의의를 모른다한들 읽고 느끼는 데에는 전혀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오히려 그의 건물을 모르는 상태에서 읽는게 더 감동을 배가할 수도 있다.)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을 위해 아주 실용적인 북디자인을 했고,
(이를테면, 그의 감성을 혀를 내두를만큼 서술한다거나, 그에 수반되는 이야기를 하는 칸이
전혀 없다고 할 정도로 텍스트가 적다. 개인적으로 드로잉이 가득한 화집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용도 디테일하며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쓰였다.
덧붙여 학생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그의 취지에 걸맞게 가격도 그에 어울리게 매우 저렴하다.

그런데, 현재 한국에서는 이 번역본이 절판된 상황이라고 한다.
절판의 이유에는 출판계의 불황과 더불어, 다른 르 꼬르뷔지에의 책에 비해 출판의 메리트가 없는 아이템으로
받아들여지기에 그럴 수 있다지만,
건축을 공부하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건축에 대한 매력을 느끼는 사람 내지
나처럼 뭔가 다른 자극을 받고싶은 사람에게 아주 좋은 접근이 될 것같은데 아쉬운 일이다.


(르 꼬르뷔지에의 건축물 - 위에서부터 차례로,
마르세유의 유니떼 다바따시옹,
찬디가르의 고등연방법원,
책에는 없으나 그의 대표작 롱샴 교회)

posted by johnjung
2011. 2. 6. 08:51 Review/글에 관한
성공하는남자의옷차림
카테고리 자기계발 > 성공/처세 > 자기혁신/자기관리
지은이 존T. 몰로이 (황금가지,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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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복식의 기초를 기본으로 하여,
저자가 리서치 결과로 얻은 복식에 대한 선호성에 대한 통계를 첨부,
멋지게 보이는 스타일링 팁이라기 보다는 
클라이언트를 상대하는 데 있어서 전략적인 관점에서 대응하는,
비즈니스 팁으로서의 복식을 설명하고 있다.

통계결과를 근거로 단정적으로 결정짓는 글쓴이의 어투 탓에
복식에 대해 갈피를 못 찾는 이들에게 선뜻 권할 정도로 내용적으로 크게 신뢰한다.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여성관점에서의 남성 복식과.
남성의 사회생활에서 필요한 복식과는 괴리감이 있다.
많은 패션산업의 소비자가 여성인만큼,
여성적인 관점이 그 산업을 읽는 주류의 눈이 될지 모르지만,
그 복식의 필요성을 위해서는 그것과 다른 관점이 필요하다.
..이를 설명해줄 수 있는 좋은 책이 아닌가싶다.
posted by johnjung
2011. 2. 4. 17:27 Review/글에 관한
풍요한사회
카테고리 경제/경영 > 경제일반 > 경제학일반
지은이 존 갤브레이스 (한국경제신문사,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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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화두는 'conventional wisdom, 통념'이다.
리카르도, 멜서스, 케인스 등등 선배 경제학자들의 멱살을 잡아채고,
"얘네가 말한 게 뭐가 됐는지 봐라" 하며 경고를 날린다.
서브프라임사태, 모기지론의 폐해 등등 
당시 미국 경제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하던 모습이 
책 읽을 당시에는 극성이라고 생각했는데,
현재의 미국 경제 모습을 들여다볼 때,
지금서 생각하면 참 다 맞아들어가는 이야기였구나 싶다.

처음 이 책을 잡은 건, 사회복지학이 사회과학으로 분류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복지학과 커리큘럼에서는 경제학에 대한 어떠한 언급이 없는 것에서 착안,
학교에 대한 반발심으로 읽기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반발심을 돕는 이 책의 당시 경제학의 메인스트림에 반발하는 이론도출과정과 함께
포마드기름마냥 보수적일 것 같던 표지의 첫느낌과는 상반되게 위트가 살아숨쉬는 논지에 기가 막히게 반했고, 
특히나 통념을 끊임없이 의심하는 자세는
그 이후 학창시절 뿐만 아니라 지금 삶을 이끌어나가는 중요한 토대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경제학에 대한 이해에도 크게 도움이 되지만,
세상에 대한 용기를 자주 잃어버리는,
특히나 세상의 시작임에도 불구, 
'안정성'이란 가치에 영혼마저 매몰시키는 걸 통념으로 인지하는,
많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posted by johnjung
2011. 2. 4. 17:02 Review/글에 관한
공공의적들작가의길을묻는28통의편지
카테고리 인문 > 철학 > 교양철학
지은이 베르나르 앙리 레비 (프로네시스,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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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고서 처음에는 '작가지망생'들에게 보내는 내용인가 싶었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은 그 방향을 넘어서서,
피는 끓게 하나, 진의를 확인하기 어려운 어젠다 설정에 하루하루 들끓는 현대인들에게
이런 상황 안에서 줏대를 갖게 해주는 삶의 자세를 건네주는 느낌을 받았다.

베르나르 앙리 레비, 영화감독, 작가, 캐비어먹는 진보주의자, 같은 진보라인에서도 
대세에 휘말리지않는 자세로 인하여 비판자들이 많은, 
덧붙여, 자신에 대한 비방글이 인터넷에 실리면,
구글에 자기 이름으로 알람기능을 걸어 그 게시물을 쫓아가 논쟁을 벌이고마는 진짜 쌈닭.
(불어로 이름 적으면, 내 블로그도 오는건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ㅋ)

미셸 우엘벡, '소립자' 하나만으로도 너무 유명한 작가.
인종차별주의자, 우파아나키스트, 여성혐오자, 우울한 허무주의자의 이름으로도
알려져있기도한, 극단적 우파이나 우파에서도 그다지 선호하지않는 의식가.

그 양 극단의 그네들이
"대체 우린 왜 뒤마처럼 존중받지 못하는가?" 에 대해 서로 편지를 주고 받기 시작한다.

내용은 대부분의 프랑스의 인문서가 그렇듯이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있는 문헌정보의 범위를 넘어선다.
수다스런 프랑스인답게 각종 유럽 철학, 인물, 이야기들이 그들의 사상에 줄줄 나열된다.

특히나 알랭드보통을 지식의 확장이란 개념에서 좋아하셨다면, 
이 책을 읽으시면 더 만족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알랭드보통이 우리에게 매끈한 수박껍데기로 껍데기를 벗겨 김치로 만들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철학 가용성의 전도사였다면,
이들은 프랑스철학의 육질과 과즙에 대한 그들의 애정을 그대로 드러내며,
그 철학이 어떻게 그들의 지금의 사상과 행동을 임하게 되는 어떤 매개체가 되었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난 이 책을 통해서 세상에 대한 관심을 갖는게 어떤 노블레스 오블리쥬라던가.
배 부르고 등 따신 사람들이 의무적으로 해야하는 그런 게 아니라,
현재를 위해서, 그리고 미래를 위해서, 그리고,내 가족과 내 주변의 누군가를 위해서,
생각을 정리하고 성장시켜야만 한다는 윤리적 당위성을 조금은 깨닫게되는 계기를 얻을 수 있었다.

맘에 드는 이야기가 많아 종종 가까이두고 읽어봄직하다.

사족.

책 내용 중에, 자신들의 의견이 타인과 다르다고 묵살되고 공격받는 현 프랑스의 분위기를 비판하는 부분이 있었다.
'프랑스의 국격이란 예전 많은 의견을 포용하는 모습을 지칭하는 것이었는데, 
지금의 프랑스는 그렇지않아 아쉽다'란 부분에서,
G7기간동안 시위를 인위적으로 막고, 온순한 나라의 모양새를 보여주려 노력한 현 MB정권이 생각났다.
과연 '격'이란 무엇인가?


posted by johnjung
2011. 1. 10. 17:46 Review/글에 관한

돌아온퇴마사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공포/추리소설
지은이 마이크 캐리 (노블마인,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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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목걸이
카테고리 소설 > 장르소설 > 판타지소설
지은이 마이크 캐리 (노블마인,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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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낀점

예전에 이우혁의 '퇴마록'이 발간되었을 때 엄청 팬이었다.
이 책에서 보여진 오컬트와 무협성을 가미한 내용전개는 
마치 '영환도사'에 대한 소재를 처음 말로 들었을 때처럼,
영화관에서 그 실체를 경험하기 전처럼 굉장히 매혹적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예전 한가람문고에서 그 한자리에 서서 목 아픈 걸 견뎌가며 읽었던기억이 있는데
그 디테일한 귀신이야기의 공포 속에 모골이 송연해지는 '오한'까지 오는 경험까지
맞대하면서도 그 책을 끝까지 다 읽어버리는 적이 있을 정도였다.
(알고봤더니 무서워서 그런게 아니라 진짜 감기였다. 집에 와서 몸살로 누웠음.ㅋ)

그러나, 머리가 굵어졌기 때문이었을까, 사춘기의 발로탓이었을까.
어느 순간 책 중에 드러나기 시작한 민족주의 노선에 지루해져 
그 책을 어느 순간부터는 전혀 찾지않게 되긴 했지만,
그 때부터 오컬트란 장르는 분명 내가 매력을 느끼는 부분이란 걸 깨닫게되었다.
   
하지만, 이런 장르의 소설은 당시에 읽었던, 
누구 하나 베고 '레벨업'했네, 뭘 로그인했네 등의 게임적 표현이 무성하던
판타지인지 게임메뉴얼인지 분간 안되던 어떤 서적의 경험 탓에 
'그다지 볼만한 건 없구나'란 생각으로 더 이상 찾지않게 되었다.

오히려 그런 장르들은 책보다는 영상물, '헬보이''슈퍼내츄럴','콘스탄틴' 등에서
매력을 취해가고 있었던 찰나 , 바로 그 콘스탄틴의 작가가 소설을 발간했다는
광고문 앞의 이 책을 발견했다.

그 암울한 분위기의 위트를 기억하던 나는,
키아누 리브스의 어떤 에지의 수려함을 더욱 매끄럽게 다루기 위해 쓰였던 정서적 완만함의 매개체,
그 장치적 기능의 위트가 그야말로 덕지덕지, 주인공에 달라붙어 있던 거였다.
그래픽 노블 안의  다이나믹한 동선들 속에서 지나가듯 얹어있던 토핑이,
점잖은 텍스트들 틈에 버젓이 올려놓여진 걸 읽고 있자니,
오컬트적 분위기도 분위기지만
보다 더 그 코믹한 표현을 머리 안에서 상상해가며 책을 훝어내렸다.

읽고난 결론은 이렇다.

그래픽 노블에서 주고 받는 어떤 만담에 매력을 느끼시는 분,
이게 판타지인지 게임 메뉴얼인지 구분안되는 어떤 경험에
판타지는 그냥 유치한 장르다, 사실 읽은 것 자체가 좀 불편했다는 선입견을 가지신 분,
그렇다고 실마릴리온, 반지의 제왕을 읽자니 그 무게에 억눌려 판타지 문학을 읽으라는 건지,
배우라는 건지에 한숨만 나오시는 분,
근데 오컬트 판타지라는 장르에 다소 약간의 매력이 있으신 분,

그런 나같은 분께 추천한다.

이거 웃긴다. 아주 쉽고 읽을만하다.
쉽게 읽어내려가 머리 안에 어떤 감명이 굳이 남는 게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 안의 이야기들은 한편의 영화처럼 흥미로운 플룻으로 차여있다.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2권이 1권보다 흥미성이 좀 떨어지는데,
앞으로 어떻게 진행이 될지가 궁금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3권은 이미 외국에는 발간된 모양이지만, 한국에는 아직인데 다소 기대가 된다.




posted by johnjung
2011. 1. 4. 11:35 Review/글에 관한
빠르게읽고정확히이해하기
카테고리 인문 > 심리학 > 감정/학습심리 > 인식과사고
지은이 토니 부잔 (사계절, 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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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려면똑똑하게하라마인드맵창시자토니부잔의지속가능한공부법
카테고리 자기계발 > 성공/처세 > 자기혁신/자기관리
지은이 토니 부잔 (중앙북스,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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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맵두뇌사용법
카테고리 자기계발 > 자기능력계발 > 창의적문제해결
지은이 토니 부잔 (비즈니스맵,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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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기법
카테고리 자기계발 > 비즈니스능력계발 > 비즈니스소양
지은이 토니 부잔 (비즈니스맵,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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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기간에 위의 토니부잔의 저서를 읽으면서 그의 학습이론을 나름 정리해보았다.

요점은,
1. 학습 후, 10분 후, 24시간 후, 일주일 후, 한달 후, 6개월 후에 공부한 1시간 당 2분의 복습시간을 가져야한다.
2. 찬찬히 읽는 것, 흔히 말하는 정독이라 함이 오히려 뇌기능을 저하시키는 요인이다.
3. 숫자, 이미지와 연동하여 암기하는 것이 좌뇌 우뇌를 함께 활발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다

느낀 점은.
1. 보통 말하는 '스터디'의 강점이 어떤 것인지,
이러한 마인드맵과정 없이는 그 스터디의 강점을 활용할 수 없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2. 책을 훝어서 읽는 걸 언제나 원칙으로 하던 날 죄책감에서 구원했다.
3. 메이저 기억법을 나름 한글 음운에 맞추어 일단 1-100번까지의 한글리스트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4. 역시 단어는 어근, 어미다. H모사식의 나열식 보카북, 놓지 못하는 미련 버리는 데에 한몫했다.




posted by johnjung
2010. 2. 23. 11:40 Review/글에 관한


이기심은 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이기심에서 발현되는 어떠한 것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적용되어진 윤리라는 범주를
어긋나는 '죄'라는 것을 창출해내어서 그렇지, 이기심 자체를 죄악시하는 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삶의 에너지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린 그 이기심 탓에 모두가 외톨이가 되고만다.
서로를 위한다는 마음으로 가정을 이루거나, 어떤 공동체를 형성하거나 하지만,
결국, 마음 한켠은 알고 있다. 이것이 이기심의 발로라는 걸.
나를 위해 사랑을 했고, 나를 위해 가정을 만들고,
나를 위해 어떤 사람에게 선을 베풀었다는 걸 도무지가 벗어날 수가 없다.
삶의 어떠한 가치마저 모두 벗어버린다한들.
인간은 '나'라는 가치를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러나, 그 고백같은 인지과정에서,
사람 간의 미움이라던가 부정적 감정들을 놓아버릴 수 있는 것 같다.

나도 딱히 다르지 않을테니까.
당신이 이기적이었던 건 어쩔 수 없는 거니까.
그저 당신도 나처럼 그 과정 와중에 그저 외로운 사람이었을테니까.

당신도 이걸 알게 되었다면 날 그렇게 미워하진 않겠지.
또, 이제와 내가 이걸 알게되었다한들, 내가 이기적이 안 되는 건 아니겠지.

삶을 그 시점에서 바라볼 때 
보다 더 평화롭게 살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일요일 오후에 들었다.
마치, 싯타르타가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듯,
마스터 키튼보다가 말이지. :)

image : 마스터 키튼 4권. 길고도 무더운 날 /chapter1. 기쁨의 벽

posted by johnjung
2009. 10. 26. 23:23 Review/글에 관한

누군가 뻐꾹하고 운다. 1
카테고리 만화
지은이 IDA TATSUHIKO (대원씨아이(주),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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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한번 들여다보고, 그리고 표지를 들여다보고,
소프트하며 추리면이 조금 강화된 이토 준지나 피안도같은 분위기를 연상하며 잡아들었다.

요괴로 시작하더니, 세기말적인 요소가 가미,
후에 생체병기와 같은 촉수물 형태로 나아가더니,
결국, 달덩어리로 끝내다.

그림체, 분위기치곤 이쁘면서 가볍다. (그래서, 별로다.)
무언가 있어보이는 듯이 진행되던 스토리는
어느새, 무게를 잃고 작가가 표출하고 싶은 이미지를 드러나기 위한 장치 정도로 전락해버렸다.

기괴한 만화를 끌어내기 위한 요소는 있지만,
너무 자주 보아왔던 아이템인데다가, 그것마저도 팬시해서,
기대했던 만큼 실망했다.

너무 많은 것을 하려했을까,
너무 어렵게 시작했고 그에 비해 너무 흐지부지하게 끝나다.
아마도 인기도 없으니 후딱 접자는 편집부의 말에 작가가 자기가 생각했던 아이템 집어넣기에
급급한 모양새였던 게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posted by johnjung

2009. 10. 26. 23:09 Review/글에 관한
카테고리 만화
지은이 ISHIZUKA SHINICHI (학산문화사,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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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원래 단편으로 이루어진 만화를 좋아하는데,
이 만화는 그야말로 스토리 플룻도 시원시원하고,
무엇보다 결론을 짓는 과정이 그야말로 명쾌 자체인지라,
무척 맘에 들었다.

작가의 철학 자체가 만화에 그대로 실려있다면.
아마도 그의 삶 자체가 무척 명쾌할 듯.
굉장히 옆에 두고 싶어지는 사람일 것 같다.

책의 내용 중,
"죽음이란 정상을 향해 올라간다는 것에서 사는 건 등산이랑 비슷하다. 
단지 어떤 루트를 선택해서 정상을 향해 나아가는가라는 점에서 사람들간에 차이가 나타나는거야"
라고 한 주인공의 고등학교 은사가 한 말이 기억에 크게 남는다.

posted by johnjung
2009. 9. 3. 23:12 Review/글에 관한


민법공부, 어떻게 할 것인가?

서울大學校 法大敎授 法博  梁彰洙

고시계, [2004. 3.] 13쪽 이하 所收.

Ⅰ. 들어가기 전에



1. 주지하는 대로 작년 12월 초에 이번 제45회 사법시험 2차시험의 합격자가 발표되었다. 이 시험에는 5,012명이 응시하였는데, 그 중에서 80%을 넘는 4,107명이 적어도 한 과목에서 과락기준인 40점을 채우지 못하여 과락하였다고 한다. 결국 애초 예정되었던 합격정원인 1천명을 채우지 못하고 905명만이 합격자로 발표되는 전에 없던 일이 벌어졌다.

현행의 과락제도가 과연 논의의 여지 없이 설득력 있는가, 수정하거나 보완되어어야 할 사항은 없는가, 또는 아예 없애 버려야 할 것인가, 채점의 구체적 운영이나 그 기준에는 문제가 없는가 등도 살펴보아야 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도로, 현행의 제도 아래서라고는 해도 2차시험 응시자의 80%이상이 과락에 걸렸다는 사태는 아무래도 우려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흔히「사법시험공부」 또는 「고시공부」라고들 말하는데, 이 고시공부도 결국 법을 배우고 익히는 과정임에는 틀림이 없다. 나는 고시공부란 법률가가 되려고 하는 법공부라는 뜻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법률가가 되려면 사법시험에 합격하지 않으면 안 되므로, 그 고시공부의 성과를 평가하는 공식의 절차인 사법시험에서 위와 같은 일이 일어났다면, 그것은 그 만큼 법공부가 엉성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임을 말하여 주는 것이다.



2. 사실 많은 학생들이 법공부 또는 고시공부를 엉성하게 하고 있다는 징조는 이미 훨씬 전부터 확연히 나타났다. 나는 전에 사법시험 채점평을 쓰면서 그러한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예를 들어 고시계 1999년 12월호에 게재된 제41회 사법시험 채점소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동호. 201면 이하). 좀 길더라도 귀기울여 주기 바란다.



“근자에 법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민법을 공부하는 방식이 많이 바뀌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학생들의 말을 들어보면 교과서를 착실하게 읽어 기초를 차근차근 다져나가지 않고, 처음부터 사법시험 준비용 단권서를 익히고 또 그것을 익히는 것만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 책이라는 것을 보면, 그것은 민법의 이런저런 문제를 체계없이 정리하고 언필칭「최신」이라는 판례와 정체 모를 학설들을 늘어놓은 그야말로 雜書에 불과하다. 자신의 머리로 민법의 체계를 종합적으로 구상?조감하면서 밀고간 것이 아니어서, 문제의식이 단발적?즉흥적일 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 도대체 문제 자체가 어떠한 관련에서 제기되어서 어렵게 되는지를 생각하지 않고 남의 문제제기와 그에 대한 대응의 결론을 요약해 놓은 것이다.??? 문제를 인지하고 그것이 전체의 맥락에서 어떻게 위치하는가를 아는 것이야말로 모든 문제해결의 출발점이다.

무엇보다 장래의 법을 떠매고갈 학생들이, 가장 중요한 「법적으로 사고하기」를 수련함에 있어서 항상 선봉을 차지하였고 또 차지하고 있어야 할 민법의 공부에서, 이러한 잡서에 그리고 그것만에 의존하고 있다면 이는 우려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와 같은 취지의 지적은 이번의 사법시험에서 다른 법과목의 채점평에서도 읽을 수 있다. 예를 들면 형법의 시험위원이었던 李相暾 교수는 채점소감에서 다름과 같이 말하고 있다(고시계 2004년 1월호, 204면 이하)



“지금의 수험생들이 사법시험에 대비하는 과정, 아니 법학을 공부하는 전 과정을 관찰해 보면 단권화에 포함되어 있는 법학의 기본에 대한 공부마저 사라진 모습이 확인된다. 심지어 일류대학의 법과대학 강의실에도 여러 종은 커녕 한 종의 교과서마저 외면한 채 처음부터 고시효율성에 편향된 요약(문제)집을 들고 들어 오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요약집은 이론의 맥락을 거세함으로써 가능한 책이라는 점에 문제가 있다. 그렇기에 이해보다는 암기에 중점이 놓일 수밖에 없고, 논증보다는 도식화된 설명에 수험생을 길들인다. 요약집의 이 결함은 문제집의 그 상상을 초월한 두꺼움으로도 결코 매울 수 없다. 실전응용력을 반복된 훈련으로 높여주는 문제집의 과도한 풍요로움이 고시기술적 적응력을 키울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법학의 기초를 튼튼하게 해 줄 수는 없다. ... 무더기 과락사태는 고시효율성에 희생된 법학공부의 정의가 일으킨 저항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와 같이 사법시험 준비만을 위한 요약서에 의존하는 풍조는 민법뿐만 아니라 형법에도 퍼져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민법공부에 관한 한 그 후로 그러한 기운은 더욱 심화되었다고 생각된다.

아마도 상업적 동기에 좇아 대학교수의 직함을 가진 사람들이「저술」한 그러한 요약서의 수는 더욱 늘어났다. 그리고 그 공급이 다시 수요를 새로이 창출해 내고 있는 듯하다.



3. 그런데 이번 사법시험합격자발표가 난 후로부터는 여기저기서 종전의 공부방식을 청산하여야 한다는 반성의 소리가 들린다. 일찍부터 이것을 주장해 온 나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이 글은 내가 법공부의 방식에 대하여 평소에 생각해 온 것을 거칠게 정리해 본 것이다. 과연 이것이 여러 사람들에게 두루 설득력이 있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 다만 여러분에 앞서 법공부를 했고 요즈음도 그 공부를 하고 있는 선배의 경험과 그것을 스스로 반성한 결과로 생각하여 주면 족하겠다.



Ⅱ. 법공부 일반에 대하여



1. 열심히 공부하는 것

(1) 평범한 말이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열심히 공부한다」는 것이다. 밤에 잠자리에 들면서 오늘 하루 할 만큼 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 보라. 이 물음에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하여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열심히 한다는 것은 단지 많은 시간을 책상 앞에 앉아서 책을 읽었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람이 하는 일 그가 얼마나 그 일에 마음을 모았는지에 따라 결과가 현저하게 달라진다. 그것이 사람이 하는 일의 큰 특징이다. 공부에 몰두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여기서「열심히 한다」는 것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항목을 법공부에 두고, 정신을 여기에 모아야 한다. 熱心이라는 말에는 보는 것처럼 목표를 향해서 뜨겁게 달구어진 마음, 즉 전심으로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얼마인가각 중요하다. 「열심히 한다」고 하려면 이와 같이 열심히 공부하는 시간이 - 강의 듣는 시간을 제외하고 - 하루에 최소한 5시간은 되어야 하고, 방학 중이라면 적어도 8시간은 되어야 할 것이다.



(2) 그러나 너무 지나쳐서는 안 된다. 열심히 공부하는 것과 쉬는 것 또는 노는 것은 서로 상충되지 않는다. 열심히 공부하려면 쉬고 놀아야한다 이것 역시 사람 마음의 자연적 문법에 속하는 바다. 정신을 너무 오랫동안 팽팽하게 감아두면 그것은 탄력을 잃는다. 그러면 읽는 책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고 단지 눈이 활자 위를 스칠 뿐이게 된다. 여러분도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특히 법공부는 장거리뛰기와 같다. 공부해야 할 것이 끝도 없이 많다. 당연한 것이, 법은 人間事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다만 사비니가 말한 대로 그 인간사를 “어떠한 관점에서 바라본”것일 뿐이다). 그러니 장거리주자와 같은 자세로 공부에 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느긋하게 세상의 온갖 맛을 다 보고 세상의 온갖 풍경을 다 구경하면서 뛸 수는 없다. 그렇다고 조급히 서둘러서도 안 된다. 마라톤에서 주자들은 100미터 경주에서처럼 뛰지 않는다. 일정한 페이스를 지켜가면서 꾸준히 뛴다.

물론 쉬고 놀면서도 그것을 당연히 「열심히 공부한」 끝이어야 한다. 자신이 이러한 휴식을 얻을 만큼 충분히 공부하였는지 양심에 거리낌이 없어야 한다.



(3) 결국 열심히 공부하고 또 쉬다가 하다보면, 초반의 어디쯤에서 어떤 리듬을 스스로 발견하게 될 것이다. 대학생이라면 공부의 규율은 스스로 배우게 되어 있다. 사람은 모두 다르므로, 모두에게 일률적으로 맞는 리듬이란 없다. 각자가 자기에게 맞는 리듬을 찾아내서 그에 맞추어 가면 된다 그 리듬이라는 것도 식단이 지나면서 조금씩 변해 갈 것이다. 마음이 단련되어 가면 리듬도 달라지게 되어 있다.

이 리듬 또는 규율은 동시에 자기에게 부과한 기준이기도 하다. 그것은 일과표로 표현되기도 하고, 공부계획표로 구체화되기도 한다. 이러한 「계획표」를 어떠한 사정 아래서라도 꼭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역시 지켜야져야할 것으로 스스로에게 납득되어 있어야 한다.



(4) 리듬이든「계획표」든 반복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오늘과 내일과 모레, 또는 이번 주와 다음 주와 그 다음주가, 또는 이 달과 다음 달과 그 다음달이 동일하게 진행되는 것이다. 공부에서는 반복처럼 효율적인 것이 없다.

매일 5시간씩 공부하면 1주일이면 35시간을 공부한다. 그리고 하루 건너씩 매일 10시간을 공부해도 1주일이면 마찬가지로 평균 35시간을 공부한다 그러나 전자가 훨씬 낫다. 매일 반복하면 가속도가 붙는다. 어제 공부했던 것에 대한 기억이 생생해서 오늘 읽는 것이 무슨 맥락에서 무엇과 관련되어서 논의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중간에 맵을 놓고 아예 공부를 하지 않았으면 페이스를 다시 찾는데 흔히 기간이 걸린다.

그러므로 조금씩이라도 매일 계속해서 하는 것이 좋다. 만일 “삶이 다람쥐 채바퀴 돌듯 이렇게 메말라서야!”하고 한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또는 그녀에게는 공부를 하고자 하는 결심이 없다고 또는 약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삶은 그렇게 무미건조한 수련을 통하지 않으면 결국 메마른 것이 되고 만다는 것도 덧붙이고 싶다.



2. 강의를 듣는 것

법을 공부하는 학생들의 대부분은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여 법학과목을 수강한다. 그런데 강의를 듣는 것은 법공부에 매우 유용하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첫째, 강의를 통해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덜 중요한지를 알 수 잇다. 강의하는 교수는 대체로 「교과서」를 그대로 읽어내려 가지 않으며, 또 그렇게 할 시간적인 여유도 없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을 보다 상세히 설명하고, 덜 중요한 것은 간단하게 언급하거나 그냥 뛰어넘는다. 이러한 경중의 관별은 단지「교과서」를 읽고만 있어서는 얻어지지 않는데, 공부하여 할 것이 매우 많은 만큼 그 판별은 더욱 유의미하다.



(2) 둘째, 강의에서는 지금 다루고 있는 법제도 또는 법률문제 등에 한정하여 설명하기보다는 그 법제도 등이 다른 법제도와 어떠한 연관이 있는지 이 법률문제가 어떠한 보다 기본적인 문제에 연원을 두고 있으며, 이와 관련되는 법문제로서는 어떤 것이 있는지가 아울러 설명된다.

그런데 「교과서」는 전체가 한 덩어리인 것으로 쓰여진다. 민법처럼 여러 권으로 되어 있는 경우에도, 「교과서」는 그 전부를 하나인 것처럼 다룬다. 그리고 기것해야 관련 법제도 또는 관련 법률문제를 괄호 안에서 “어디어디를 참조하라”는 식으로 지시할 뿐이다. 그러나 강의에서는 많은 경우에 다양한 각도에서의 설명이 행하여진다.

법제도나 법률문제 간의 상호 관련을 아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법공부의 포인트이다. 법을 공부하는 주요한 목적의 하나는 마치 의학도가 병을 고치기 위해서 의학을 공부하는 것처럼 사회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법적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법적 분쟁은 「교과서」에 쓰여 있는 개별의 법장치 하나만에 의해서는 바로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강의를 통하여 이러한 「맥락」과「관련」을 배울 수 있는 것이다.



(3) 셋째, 대학교수는 각자 전공이 있어서 그 전공분야를 심도 있게 연구한다. 그리고 그 연구의 과정에서 얻은 것을 강의를 통하여 학생들에게 전달한다. 그런데 교수가 연구의 과정에서 얻는 것은 비단 개별 법문제에 대한 설득력 있다고 여겨지는 해석론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것이 더 중요하다고 해도 될 터인데, 법을 바라보는 시각, 그것을 다루는 방법, 나아가서 좋은 사회, 옳은 삶에 대한 견식도 있다. 「교과서」에는 어떤한 법률문제에 대한 결론만이 제시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강의에서 개별 법문제를 다루는 경우에도 교수는 자신이 왜 그러한 결론을 취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게 된다. 강의를 들음으로써 학생들은 고기 몇 마리를 얻는 데 그치지 않고 고기를 낚는 법을 은연중에 익히게 되는 것이다.



(4) 넷째, 강의를 하는 교수는 자기 나름의 정리된 입장이 있다. 어느 규정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떠한 법제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하여는 학자에 따라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공부는 이와 같이 다양한 견해를 잘 듣고 어느 것이 보다 설득력이 있는지를 판단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하나의 「교과서」에만 매달리면 그러한 「자기 나름대로 생각하는」버릇을 들이기가 쉽지 않다. 강의를 통하여 여러분은 보다 다양한 입장에 접하게 된다. 그렇게 여러 가지 견해에 접해 보는 것은 여러분의 사고를 훈련하는 데 매우 좋은 일이다.



(5) 학생이 강의를 듣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거늘 새삼 강의를 들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 자체가 괴이한 일이라고 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요즈음 대학의 교수들로부터 특히 고시공부를 한다는 학생들이 강의를 소홀히 한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은 나 역시 대학교수인지라 직업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법공부를 하는 학생들 자신을 위해서 하는 말이다.



3. 차례와 때를 지키는 것

(1) 법공부에서는 앞서도 말한대로 해야 할 것이 매우 많다. 그런데 거기에는 차례가 있고 경중이 다르다.

법은 하나의 체계를 이루고 있다. 물론 법의 분야는 매우 다양하게 나뉘어져 있다. 그러나 법은 잡다한 소재를 기준 없이 열거해 놓은 것이 아니고, 기초적인 법들과 그 법들의 원리나 기술을 전제로 해서 이것을 수정하거나 보충하는 보다 특수한 영역에 관한 법들로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법을 배우고 이해하려면 먼저 배워야 할 것과 먼저 배운 것을 바탕으로 해서 나중에 배워야 할 것이 있다. 다시 말하면, 먼저 기초적인 법분야로부터 잘 배우고 그 다음에 보다 특수적인 또는 보다 첨단적인 법분야로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모든 교육과정은 그러한 순서로 짜여져 있고, 대학의 법학커리큘럼도 예외는 아니다. 그것은 거칠게 말하면 법과대학 또는 법학과의 교과과정을 보면 알 수 있다. 물론 현재 행하여지고 있는 것에 개선의 여지가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겠으나, 그 커리큘럼은 오랫동안 법학교육을 행하고 받은 경험에 입각해서 신중하게  짜여진 것이고, 아무 생각없이 배열해 놓은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러한 기초적인 법분야로 헌법과 민법과 형법을 드는 데 별로 이론이 없다. 사법시험 제1차시험에서 이 세과목을 시험이 되고 있는 것도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2) 나중에 배울 것을 먼저 공부하게 되면 힘이 갑절이 든다. 나중에 배울 것으로 된 법분야는 대개 먼저 배워야 할 법분야의 법리를 수정하거나 보충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예를 드면 상법을 보면 거의 맨 앞에 상행위에 관한 규정이 나오는데 (상법 제46조 내지 제168조), 그것은 민법을 공부하지 아니하고는 체계적으로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 잘 알 수 없도록 되어 있다. 또 어음?수표 기타 유가증권에 관한 법리는 민법의 채권총론, 특히 채권양도의 제도를 알지 않고는 왜 그렇게 되어야 하는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법공부는 차례를 지켜서 하여야 한다. 사법시험에서 헌법?민법?형법이 별다른 이의 없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3) 법공부는 차례를 지켜서 해야 하고, 강의를 듣는 것이 법공부에 극히 유용하다면 법공부를 때에 맞추어 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귀결이 거기서부터 당연히 나온다. 즉 교과과정이 편성되어 있는 대로 강의를 듣는 동안 응분의 공부를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법과대학 또는 법학과의 통상적인 교과과정을 전제로 한다면 개별의 법학과목이 개설되는 1학년 2학기부터는 교과과정에 맞추어 법공부를 「열심히」(그 뜻은 앞서 말한 대로이다)하여야 한다는 말이 된다. 특히 대체로 2학년 1학기에는 헌법?민법?형법 등 중요과목의 강의가 한꺼번에 쏟아지므로, 이들은 제대로 쫓아가려면 비상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3학년을 마칠 때까지 약 2년 동안 강의를 따라가면 열심히 공부해 두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 극히 중요한 2학년, 3학년의 시기를 초점없이 지내 놓고서 뒤늦게서야 법공부를 한다고 돌려 책상 앞에 앉고 보면, 강의를 다시 들을 수 없고 차례도 지키지기 어렵다. 어떤 의미에서는 고군분투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학교 2학년, 3학년을 극히 중요시하여야 한다.

나는 선배 학생들이 새로 대학에 들어온 후배들에게 이런 말을 많이 한다고 들었다. 대학게 들어오면, 우선 1년 정도는 실컷 노는 것이 좋다. 그래야 법공부 또는 고시공부라는 장거리경주를 할 힘이 모아진다는 것이다. 「잘 노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 오랫 동안 마냥 놀기만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실은 아예 공부의 끈을 놓아버려서 웬만해서는 다시 공부에 손대지 못하게 되기도 하고, 적어도 책상 앞에 돌아와 전심으로 공부하게 되기까지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선배들의 말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4) 요즈음 법학을 전공하지 않으면서 법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전에 비해서 많이 늘었다. 또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였더라도 대학을 졸업한지 한참 후에야 다시 법공부를 시작하는 경우도 증가하였다고 들었다. 그러한 현상이 과연 바람직한 일인지 잘 생각해 볼 일이다. 그리고 그처럼 때를 놓치면 법공부는 그만큼 더 큰 노력과 희생을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어쨌거나 전공 여하를 불문하고, 또 원래 법공부를 하여야 할 때를 비록 놓쳤다고 해도 역시 그 공부에 차례는 지키는 것이 훨씬 낫다고 할 것이다.






Ⅲ. 민법공부에 대하여



1. 민법공부의 중요성



민법공부는 법공부 전체에 있어서 막중한 비중을 지니고 있다. 대체로 법공부를 시작하는 사람은 민법, 그중에서도 민법총clr의 교과서를 읽는 것으로 시작한다. 또 실제로 법공부를 하여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민법이 법공부의 반 또는 그 이상이라는 말을 흔히 한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에 의한 것이다. 그리고 이를 잘 이해하고 납득하는 것이야말로 민법공부를 제대로 하기 위한 전제이고 출발점이다.



(1) 민법은 사람이기만 하면 일상적으로 문제되는 사항, 즉 쉽게 말하면 재산관계와 가족관계 중에서 보편적인 것을 규율하고 있다. 그런데 온갖 종류의 재산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양상을 잠깐만이라도 생각하여 본다면, 또 남녀관계 나아가 부부관계나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등이 얼마나 착잡하고 다양한가를 잠깐만이라도 생각해 본다면, 즉 한 마디로 사람이 그냥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모습이 그 능력과 욕구와 희망에 좇아 얼마나 다채로운가를 생각하여 본다면, 민법 그 자체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쉽사리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하나의 규율대상마다 그 전개의 양상에 맞추어 규정을 「원칙/예외」그예외에 대한 예외...와 같이 다층적?복안적으로 구축하여 가지 않을 수 없으며, 또한 그 다양한 규율 사이에 모순이 없도록 논리적?체계적 자리를 마련하여 놓아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다층적?복안적으로 구축된 민법을 공부하다 보면, 저절로 법 일반에 두루 통용될 수 있는 법적 논리의 특성을 이해하게 된다.



(2)그리고 민법이 규율하는 내용은 자족적이어서, 다른 법영역에 마련되어 있는 규정이나 제도를 원용하는 일이 별로 없다. 그만큼 요건과 효과를 주도면밀하게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예를 들어 상법을 보면, 상행위에 관한 규정은 물론이고, 회사나 해상운송에 관한 규정 등 어디서나 이러저러한 경우에는 손해배상책임을 지게 된다는 규정이 다수 있다. 그러면 그 손해배상을 어떠한 방법으로, 어떠한 한 범위에서 하여야 한다는 것인가? 물론 상법 자체에 이들 문제에 대하여 특별한 규정을 두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예를 들어 상법 제137조), 그러한 특칙이 없는 한은 상법에서 정하는 손해배상책임에 대하여도 민법 제393조로부터 제399조까지가 적용된다. 그러므로 상법상의 손해배상이라고 해도, 피해자에게 발생한 모든 손해가 아니라 그 중에서 「통상의 손해」에 한정하여 배상하는 것이 원칙이다(민법 제393조 제1항). 또 그 손해배상은 원칙적으로 금전으로 하며(민법 제394조), 가해자에게 과실이 있으면 이를 고려하여 손해배상액을 감경하거나 아예 배상책임을 면할 수 있는 것이다(민법 제396조). 상법은 그 맨 앞의 제1조에서 “상사에 관하여 본법에 규정이 없으면 상관습법에 의하고 상관습법이 없으면 민법의 규정에 의한다”고 하여, 민법이 보충적으로, 그러나 일반적으로 상사에도 적용됨을 일반적으로 밝히고 있다. 그러나 설령 그러한 명문의 규정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체계해석상 민법은 당연히 마찬가지로 적용될 것이다. 이상은 비단 상법에서 정하는 손해배상책임분만 아니라, 예를 들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환경정책기본법,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제조물책임법 등에서 정하는 손해배상책임에 대하여도 다를 바 없다.



(3) 민법은 역사적으로 보면 아주 오래 전부터 발전하여 가장 완벽하게 전개된. 다시 말하면 「끝까지 생각된」법기술을 담고 있다.

이는 주로 근대 이후에 입헌주의나 죄형법정주의가 자리를 잡은 후에 비로소 체계적으로 전개된 헌법이나 형법의 제도나 이론과 대비하여 보면 쉽사리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리하여 다른 많은 법영역은 민법으로부터 개념이나 명제를 차용하여 스스로의 제도나 이론을 전개하거나, 적어도 민법상의 개념이나 이론 또는 제도를 바탕으로 하여 그 위해서 자신이 다루는 사항의 「특수성」에 좇은 특별한 법리를 발전시켜 가고 있다. 이는 특별사법의 대표적인 상법은 물론이고(예를 들면 상법 중 해상법이나 보험법은 해상운송계약법 또는 보험계약법으로 민법상의 계약법리를 당연한 전제로 하고 있으며 앞의 Ⅱ.3.(2)에서 본 대로 어음?수표법도 민법이 정하는 채권 양도에 관한 일반법리를 수정?보충한다는 관점에서야 비로소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 민법의 실행절차법인 민사소송법(가령 「청구」의 개념 등), 나아가 민법과 관련이 별로 없을 것 같은 행정법(가령 그 기축적지위에 있는「행정행위」의 개념 등) 등에 있어서도 다를 바 없다. 그리하여 많은 경우에 민법은 다른 법영역에 존재하는 「흠결」을 보충하는 역할을 한다.



(4) 한편 민법은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 나라에는 많은 법률이 있는데, 그 중에서 민법은 앞서 말한 대로 1천 1백개 이상의 조문으로 되어 있는 최대의 법률이다. 또한 민법은 많은 특별법은 물론이고, 민법전에 규정되어 있는 제도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부속법률을 거느리고 있다. 이들도 역시 통상 민법공부의 범위 내에서 다루어 진다. 현재의 법과대학 또는 법학과의 대체적인 교과과정상으로 보아도, 민법은 대체로 6개의 단위(민법의 각편을 하나의 단위로 하되, 다만 채권편은 이를 총칙과 각칙(또는 총론과 각론)으로 나누어 두 단위로 하고 있다)로 1학년부터 4학년까지 걸쳐 있으며, 그 외에 「사법입문」이나「민법연습」또는 「재산법특강」등이 마련되어 있다.



2. 몇 가지 방법의 제안



(1) 이처럼 민법은 매우 방대하고 어려운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이해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노력에 의하여야 하는 것이고, 또 그 노력은 상당한 것일 수밖에 없다.

물론 민법이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다른 과목에 비하여 훨씬 공부하기 어렵다는 것, 특히 현행의 사법시험제도가 가량 민법에의 배점 등을 통하여 그 어려움을 제대로 평가하여 주지못하고 있다는 것, 민법이 제1차시험에서도 필수과목으로 정하여져 있기도 하지만 그것이 선다형으로 출제되어 법적 사고의 성숙도보다는 단편적 법지식에 의존하기 쉽고 따라서 법공부가 아니라 사법시험이라는 것만을 놓고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생각한다면 「요령 좋게 민법의 관문을 통과하는 것」또는 「민법에서 과락만을 면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이 남보다 앞서가는 길이라고 생각될 소지도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역시 제대로 된 공부를 하여야만 제대로 된 법률가가 될 수 있을 것이 아니겠는가. 법률가를 자가의 「일」로 선택한 이상, 그리고 그「일」이 삶의 보람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이상, 그 출발점으로서 제대로 법공부를 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이하에서 여러분이 앞으로 민법을 공부해 가는 데 있어서 요령이라고 할 것들을 들어두기로 한다.



(2) 우선 「교과서」를 읽는 것에 대하여



(가) 법공부는 「교과서」를 읽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우리나라의 「교과서」는 법공부에 자료로서보다는, 추상적 명제를 체계적?종합적으로 서술하는 학문적 작업의 관점에서 작성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 「교과서」는 엄밀한 의미에서는 교과서가 아니다(이것은 내가 「교과서」를 괄호 안에 써 온 이유이다. 이하에서는 이를 제거하기로 한다). 따라서 초학자가 이를 통하여 법의 속살을 알기에 별로 적합하지 않다고 할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쨌거나 현재의 상황에서는 교과서를 통하여 법의 세계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나) 실제로 교과서를 착실하게 읽고 소화하는 일은 극히 중요한 일이고, 모든 법공부의 가장 기초적이고 동시에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교과서는 저자(들)이 일정한 체계를 세우고 이에 맞추어 어떠한 분야의 법을 균형 있게 서술한 것이다. 그것을 다 공부하고 나면 머릿속에 민법에 대한 큰 그림이 그려질 수 있고, 민법상 제도들의 복잡한 얽힘을 이해할 수 있도록 되어 잇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대중소설처럼 한 번 죽 읽고 책장에 박아두는 성질의 책이 아니다. 여러 번 반복하고 읽는 과정에서 비로소 조금씩 윤곽이 떠오르고 의미가 이해된다. 그 「파악」의 고통스로운 긴 과정을 견디어 내는 것이 바로 법공부다. 그것은 몇 달사이에 해치울 수는 도저히 없고, 아마도 최소한 1년 동안 앞의 Ⅱ.1.에서 본 바의 「열심히 하는 공부」에 의하지 않고는 어찌하여 볼 도리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요약서 등으로 피해 가려 해서는 안 된다. 나무 한 그루가 있다고 하자. 거기 돋아난 이파리만을 뜯어서 죽 펴쳐 놓고, “이것이 나무요, 나무요” 하고 외친들, 듣는 사람이 나무를 알 수 있을 건가? 땅 속 깊이 박힌 뿌리에서 땅 위로 튼실한 둥치가 솟아 오르고, 거기서 줄기가 분수처럼 뻗어나가고, 그 끝에 수많은 잎이 싱싱한 초록빛을 내며 햇빛에 반짝이고 있는 나무를 알아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다) 교과서를 읽어가는 데 있어서는 다음과 같은 점에 주의하여야 한다.



(a) 아마 처음 한두 번은 전체에 대한 개관을 얻기 위하여 죽 훑어보는 것이 필요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후로는 꼼꼼하게 읽어야 한다. 쓰여있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알고 넘어가야 한다.



(b) 자신이 읽고 이해한 바를 자신의 말로 다시 써 보는 것이 좋다. 한 단락이 끝나면 그 단락의 내용을 요목식으로 정리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c) 그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여 보아도 알 수 없는 것은 모르겠는 점을 적어두고, 다음으로 넘어간다. 그러면 후에 이에 관련되는 서술이 다시 나오고, 그 때 비로서 앞서 알 수 없었던 점을 알게 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d) 교과서에 인용되어 잇는 판결을 찾아 읽어라. 편결을 읽을 때는 그 요지만이 아니라 판결 전부를 읽어야 한다. 그리고 그 판결의 내용을 ① 사실관계. ② 원고가 청구하는 바와 그 청구의 법적 원인(민사소송법에 말하는 청구취지와 청구이유), ③ 판결에서 문제된 법적 쟁점, ④ 그에 대한 대법원(필요하면 원심도)의 판단과 그 이유, ⑤ 사건의 결말(원고의 청구가 전부 또는 일부 인용되었는지, 기각되었는지)의 다섯 가지로 정리하라.



(e) 「참조」표시가 되어 있는 것(교과서에“...참조”라고 쓰여 있는 것은 “참조하라”는 명령이다)은 그 부분으로 가서 읽어야 한다. 모르는 용어가 나오면 그 의미를 알고 넘어가야 한다.



(f) 여러분의 흥미를 끄는 법률문제에 대하여는 때로 그에 관한 본격적인 논문을 찾아서 읽어 보는 것도 유익하다. 법학논문은 그것이 잘 쓰여진 것이라면 , 교과서에서는 별로 언급되어 있지 않은 시각과 이익형량을 제시할 것이다. 설사 그 논문의 결론에 백 퍼센트 동의할 수 없는 경우라도, 통설적 견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할 바나 그 난점을 찌르고 나올 것이다. 그리하면 여러분은 법적 논의의 방식에 보다 익숙하게 도면서, 동시에 거기서 다루어진 법리를 보다 심도 있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g) 읽은 양에 집착하여서는 안된다. 모든 공부가 그렇듯이, 민법공부도 체계적으로 하여야 함은 당연하나, 통상 하는 방법, 즉 민법총칙 교과서의 머리부터 꼬리까지 거의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꾹 참고」그냥 몇 번씩이고 읽어가는 것은 가능한 방법 중의 하나라고는 할 수 있어도 역시 우둔한 방법이다.



(h) 학설대립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라. 학자들은 구체적인 법률해석문제에 대하여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고 상대방의 입장의 난점을 지적하기 위하여 필설을 다하여 노력한다. 그러나 법을 배우는 입장에서는 그 견해 대립이 기본적으로 어디서 연유하는가를 파악함으로써 족하다. 특히 실제로 법적 처리에 별다른 차이를 낳지 않는, 또는 차이가 있다고 해도 매우 예외적으로밖에 문제되지 않는, 극히 미세한 법률논의에 말려 들어갈 필요가 없다(그러한 의미에서 민법총칙의 초입에 태아의 권리능력을 둘러싼 소위 정지조건설과 해제조건설의 대립이 제시되어 있는 것은 슬픈 일이다. 과격한 충고를 하자면, 이 부분의 서술은 아예 읽지 않아도 무방하다)



(3) 법전을 항상 곁에 두고 참고하여야 한다.



(가) 법전은 모든 법공부의 출발점이다. 법조문이 인용되어 있으며, 언제나 법전을 들추어 꼼꼼하게 읽어야 한다. 「교과서」는 말하자면 법전의 의미를 보다 자세히 풀어 해석하고 거기에 법전이 규정하고 있지 않은 것을 보충하면서 체계를 세운 것에 불과하다고도 말할 수 있다.



어느 하나의 법규정을 읽고 난 다음에는, 우선 그 규정이 그렇게 되어 있고 달리 되어 있지 않은 이유, 즉 입법이유를 잘 생각해 보라. 그 규정으로 말미암아 어떠한 이익이 증진되고 어떠한 목적이 실현되며, 반면에 어떤한 이익과 목적이 희생되거나 후퇴하는지를 따져보라. 그리고 그 규정과 관련된다고 교과서에 적혀 있는 제도 도는 규정을 찾아서 읽어 보라. 그리하여 어느 하나의 규정을 보면, 바로 그 관련제도 등이 곧바로 연상되도록 익혀 두라.



(나) 이와 관련하여 중요한 점은 자신이 법적으로 논의하는 바를 뒷받침하는 법조문을 인용하는 것이다. 성문의 법조항은 자신의 주장에 대하여 1차적이면서도 강력한 근거가 되는 것이다. 法的 談論이 결국「근거지움」의 문제임을 생각한다면, 이와 같이 강력한 근거를 동원하지 아니하는 또는 동원할 줄 모르는 사람은 법률가가 되기 위한 훈련을 아직 충분히 받지 못하였다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장 버릇을 들이기 위해서는, 불필요하다 싶을 정도로 번거롭게 법조항을 인용하는 것이 좋다.



그 인용의 방식 등에 대하여 몇 마디 해 둔다.

첫째, 법명을 지시함이 없이 그냥 “126조” 또는 “390조” 등과 같이 인용하여서는 안 된다. 법명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이하 민빕의 규정은 법명의 지시 없이 인용한다”는 뜻을 미리 밝혀 두어야 한다.

둘째, 법조항을 우리나라에서 통용되지 않는 방식으로 인용하여서는 안 된다. 예를 들면 “§ 126”등이 그것이다(한편“§ 126조”와 같이 쓴 예도 있는데, 이것은 §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탓이리라). § 표시(=Paragraph)는 예를 들어 독일민법전에서는 조를 가리키나,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지 않다(스위스나 프랑스에서도 민법전의 조를 §로 표시하지 않고 Artikel 또는 article로 되어 있으며 그 약어는 Art. 또는 art.이다). 혹 이 방식으로 인용할 것을 고집한다면 이 경우에도 “이하 법률의 조는 §로를 서서 표시한다”는 듯을 별도로 지적할 필요가 있을는지 모른다.

셋째, 법조항의 인용은 빠짐없이 그리고 정확하게 하여야 할 것은 물론이지만, 또한 세부적으로 하여야 한다. 한 조에 둘 이상의 항이 있고 그 중 한 항만이 문제되는데, 또는 본문과 단서가 있고 그 중 본문 또는 단서만이 문제되는 데, 그냥 “○○조”라고만 하여서는 안 된다.



(4) 마지막으로 이해하는 것도 외우는 것도 다 중요하다는 것을 덧붙여 둔다.



(가) 다른 모든 공부에서도 마찬가지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아울러 무조건 외우는 것처럼 위험한 것은 없다. 이를 피하기 위하여는, 우선 교과서의 추상적 명제가 어떤한 구체적 사실관계를 대상으로 하는 것인가를 눈 앞에 그려보아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도 교과서에 인용되어 있는 판결을 찾아 읽어보는 것은 매우 유익하다.

(나) 그렇다고 해서 외우기를 외면하여서는 안 된다. 「외우기」는 특히 공부의 초입단계에서 매우 중요한 공부방법이다. 물론 외워야 할 것을 구별해 내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기는 하나, 일단 중요한 정의나 개념, 중요한 법제도의 기본적 내용은 외워야 한다.



Ⅳ. 小結



1. 무릇 모든 공부는 엉성하게 해서는 안 된다. 엉성하게 공부하느니 노는 것이 낫다. 어른들은 늘 공부해라. 공부해라 하고 귀찮도록 말하지만, 시살은 잘 노는 것도 이 거친 삶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뿐만 아니라, 아예 놀면서는 그래도 자신이 비워 둔 정신의 빈터를 스스로 의식하고 있게 되어서 언젠가는 그것을 채우려고 씨름하게 된다. 그것이 사람이 마음의 구조이다. 그러나 공부를 한다고 늘상 책상 앞에 붙어 앉아 있으면서 요령만 피우고 있으면, 공부를 한 듯한 생각을 하게 된다. 때로는 아주 공을 들여서 공부한 듯한 착각도 들게 하는 것이다.

의사가 엉성항 지식을 가지고 환자를 다루면 환자의 건강을 나쁘게 하고 아예 죽일 수도 있다. 엉성하게 공부를 한 사람은 아예 의사가 되지 않는 편이 훨씬 낫다. 법률가도 마찬가지다.



2. 사법시험을 준비하고 응시하는 것은 법공부의 어느 한 단계일 뿐임을 명심하여야 한다.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고 해서 법공부가 끝난 것은 아니다. 비록 요행으로 사법시험에는 합격하였을지는 몰라도, 법공부를 엉성하게 하였으면 엉성항 법률가밖에 될 수 없다. 전처럼 사법시험 합격자가 기껏해야 몇 십 명밖에 안 되었던 때에는 고시에 붙었다는 것만으로 혹 일생 안락한 생활이 보장되었을지 모르지만, 그 정원이 1천명이 된 요즈음에 엉성한 법률가로 지내는 것은 헛된 명예와 고통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우선 공부할 때를 놓치지 말라. 그리고 열심히 또 제대로 공부를 하라. 길고 정돈된 수련만이 여러분에게 진정한 즐거움과 휴식을 가져다 줄 것이다.


posted by johnj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