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그 어떠한 동조도 난 해 줄 수 없었다.
그녀가 말하는 고통이 어떤 것인지 난 도저히 가늠조차 할 수 없었고,
솔직히 이런 걸 쉽게 쉽게 들어줄 정도로 되바라진 사람도 아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녀의 엉성한 이야기 조합에,
(그녀는 정말 스토리텔러로선 정말 최악이다. 그녀의 이야기에는 발단-전개-절정 이런 걸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왜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백투더퓨처라고 했는지 알 것 같다.)
내가 그 이야기가 무슨 이야기인지 집중하기 위해, 확인을 해보는 방법뿐이었다.
"그러니까. 원장이 널 불러다가 일에 좀 더 집중하라고 했다는 말인 거지?"
잠깐, 뜸을 들였다가,
"야, 정말 너무한다. 밤중에 꼬박 14시간을 일하는 사람한테 말야?"
역시 여성과의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듣고 있는 바를 다시금 확인하고, 그에 대한 감정적 조류에 슬쩍 힘을 실어주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 상처를 주지 않는 최고의 방법이다.
이를 통해 상대방은 이에 대한 감정과 생각을 송두리채 내어놓을테니...
그러나, 여기서 한마디라도 더 듣기를 원치 않는다면 이 방법은 정말 비추다.
그렇다면, 아마도 폭포처럼 떨어지는 이의 감정과 생각에 당신은 녹초가 되어버릴테니까..
"그것뿐만이 아니었다니까..글쎄, 나보고 여기는 아이들 키우는 곳이지, 직원들 키우는 곳은 아니라고 했다니깐!! 아니, 내가 무슨 여기서 업무적인 면에서 무어가 모자라다고...."
위로의 말을 꺼내기가 사뭇 힘들어진다.
아까 했기 때문에,..나처럼 대화에 능숙하지 않은, 형식적인 답변만을 떠 올릴 수 밖에 없는
나에게 동일한 피드백의 활용을 그다지 효율적이지 못하다.
한 말만 계속 할 수 밖에 없기에...
그래서, "어떡하니...."와 안쓰러워보이는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할 뿐이었다.
물론, 이는 은근히 " 난 더 이상 무엇을 해 줄수가 없다"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이미 파악했겠지. 많은 시간을 이렇게 함께 가져왔기에,
그녀는 내 곤란함을 살짝 흘겨보며 깨무는 입술로서 이에 대해 알아들었다는 신호를 보냈다.
이젠 좀 안정이 되겠지. 그녀가 조금 더 감정적이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럼, 우린 보다 나은 사이로 발전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하긴 그랬다면 이만큼 서로 간의 감정에 솔직하게 표현할 수도 없었겠지.
이어, 난 그녀에게 적절한 위로를 넘겼고, 그녀는 손수건을 접으며 이 대화를 접으려는 것 같았다. 남은 카푸치노가 1/3 정도. 직장에 들어 갈 시간이 30분 정도,...
무슨 이야기를 할까? 새로 간 음식점 이야길 할까?
아, 철훈이가 애아빠가 되었다는 이야길 할까? 아니다.
얘도 은근히 걔 맘에 들어했으니 괜시리 씁쓸해 할지도 모르겠네.
빨대를 휘저으며 대화의 주제를 다시 잡으려고 생각하던 내게 그녀가 물었다.
" 아, 맞다. 야, 나 걔 봤다. 한국에 있던데? "
순간 착각이었을까? 그녀가 이빨을 드러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