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 the weather outside is frightful, But the fire is so delightful, And since we've no place to go, Let it snow, let it snow, let it snow.
It doesn't show signs of stopping, And I brought some corn for popping; The lights are turned way down low, Let it snow, let it snow, let it snow.
When we finally kiss good night, How I'll hate going out in the storm; But if you really hold me tight, All the way home I'll be warm. The fire is slowly dying, And, my dear, we're still good-bye-ing, But as long as you love me so. Let it snow, let it snow, let it snow.
주변분들 중에 이 노랫말이, '눈아 내려라' 하는 소망을 담은 단순한 뜻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으시던데요
어제 용산우체국을 지나는데, 그 비오는 와중에 서로가 멱살을 부여잡고 싸우는 커플을 봤다.
비오는 와중에 무슨 일이야,....그러면서 상황을 살피는데,
아무래도 남자가 많이 화가 나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여자 입장에서 남자 옷 귀퉁이를 부여잡고 애틋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걸 보고 있자니,
대강 상황을 알 것 같았다.
윗 노래와 상반배치되는 상황,
이별의 시점에 들어선 연인이라면 절대 겪고 싶지 않은 상황이라 할 수 있는데,
사실, 백마디 말보다도 그 여자 분의 그 애틋한 눈빛이 그 남성분을 잡고있는 멱살과는 상반된,
"제발..."의 메세지를 담고있는 듯해서, 스쳐지나가면서 본 내 마음도 다 절절해졌다.
찰나였지만, 그 여성분이 부럽기도 했다.
이별의 순간. 자기 자신을 저렇게 허물어버리고, 그 사랑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란 생각에 이 노래 가사와 비슷하게 이별의 정리에 가치부여를 하며 준비했던 나로서는
그 분의 그런 모습이 다소 부럽기도 했다.
물론, 알고 있다.
그 상황에서, 사랑을 붙잡는 이가 이야기하는 진심이,
사랑을 떠나려하는 자에겐 얼마나 걸리적거리며 혐오스러운 일인지.
아마 세상의 많은 사람이 굳이 경험을 하지 않더라도,
함께였던 사람들에게는, 상대의 그런 불편함을 파악하는 게 딱히 어려운 일이 아니란 것을 안다.
물론, 그 결정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도, 괴로웠는지도.
그래서, "진심이라면", 혹은 "정말 사랑했다면"이란 단서 앞에,
세상은 "잘 안녕하는 것","깔끔히 정리해주는 것"을 사랑의 가장 좋은 종착역으로 정의내리는 듯하다.
그래, 일반적으로 생각해보았을 때,
진실한 사랑에서 빠질 수 없는 "희생"이란 측면과
그 관계 안에서 언제나 형성되었을 "배려"라는 측면을 한데 합친, 가장 좋은 방법이다.
비록 관계는 마치 칼로 자르듯, 그대로 끝나지만, 그 과정 와중은 사랑의 연속이라는, 이상적인 종착점.
그러나, 그런 이별을 결정한 순간에 다들 잠시 잊는 듯하다. 그 과정이 얼마나 괴로울지에 대해.
이건 사랑인 거니까. 사랑의 연속이니까. 끝이 아닌거니까.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그 내면에는 감정적으로 더 이상 불거지지않으려는 자기보호와
현실을 직시한 이성적인 면모가 있다는 걸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남겨진 자의 빈곤한 마음이, 메아리처럼 울려퍼진 그 울음섞인 자신의 목소리가,
부메랑되어 그 완벽한 추억의 비겁한 단면을 후갈길 것이라곤 상상조차 못하는 듯하다.
사랑의 단절을 통한 그 이별 앞에,
그런 아픔의 시간이 굉장히 짧거나, 상처도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진실로 사랑했기에 후회할 것은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시간이 차차 흘러감에 따라 당사자들은 조금씩 깨닫게 된다.
자신의 비겁함에서 이 모든게 파생되었을 수도 있다는 걸.
그래서, 자기 자신이 이런 상황을 연출해낸 행위가 얼마나 가증스러운지, 역겨운 일인지,
(실제 그렇지 않더라도,) 조금씩 깨달아가며, 내 자신의 이기심에 가슴을 치게되는 모양새를 갖춘다.
상대가 어떤 잘못을 했다한들,
이별의 단초 및 시작점이 상대였다한들,
자기 자신의 자의식과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
'어리석다'란 표현이 가장 적합하다.
'고생 사서 한다'는 표현도 이에 가깝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연인들은 이런 깔끔한 이별을 가장 좋은 모양새로 생각한다.
뭐랄까. 진정 사랑을 했던 관계 종료의 정답이라고나 할까.
그래, 어차피 무기력해질 꺼, 조금이나마 아름다워 보이게 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지.
그래서, 관계 안에 목적의식이 아닌 사랑 그 자체로의 감정이 있었다면
이별 앞에 그렇게 깔끔해진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니,
혹시나 이 글을 보는 사람 중에 그런 이별을 준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과정을 이미 해본 사람으로서 조언을 하겠는데,
입에 맴도는 수신처를 잃어버린 감정의 메시지를 애써 참아,
차후에 돌아올 자책감을 직면하지 말고,
위의 여성분처럼, 살포시 멱살이라도 잡아주어 그 애틋한 마음을 표현하길 추천한다.
그 이별 와중에 얻게 된 그 상실감과 많은 분노를 자신에게 돌리지 않기를...
이 노래를 들으며 더한 상실감에 늘어지지 않기를,...바란다.
사족.
하지만, 돌이켜보면, 상대의 마음을 위하는 사랑이 아니었다면
그런 이별을 할 사고 자체가 생겨날 수가 없는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순간을 벗어나 상대방을 사랑했기에,
그 과정 와중에 상대방에게 갖은 조소와 비웃음을 머금을 지언정,
그보다 더한 조소를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내뱉아,
다른 만남들에 어떤 한계를 갖게될지언정,
이를 악물며 그 메세지에 대한 응답을 준비해낼 수 밖에 없는 게 아닐까......
Babe, baby, baby, I'm Gonna Leave You.
I said baby, you know I'm gonna leave you.
I'll leave you when the summertime,
Leave you when the summer comes a-rollin'
Leave you when the summer comes along.
Baby, baby, I don't wanna leave you,
I ain't jokin' woman, I got to ramble.
Oh, yeah, baby, baby, I believin',
We really got to ramble.
I can hear it callin' me the way it used to do,
I can hear it callin' me back home!
Babe...I'm gonna leave you
Oh, baby, you know, I've really got to leave you
Oh I can hear it callin 'me
I said don't you hear it callin' me the way it used to do?
I know I never never never gonna leave your babe
But I got to go away from this place,
I've got to quit you, yeah
Baby, ooh don't you hear it callin' me?
Woman, woman, I know, I know
It feels good to have you back again
And I know that one day baby, it's really gonna grow, yes it is.
We gonna go walkin' through the park every day.
Come what may, every day
It was really, really good.
You made me happy every single day.
But now... I've got to go away!
Baby, baby, baby, baby
That's when it's callin' me
I said that's when it's callin' me back home...
일어났다 다시 앉았다.
치마를 입었음에도 자꾸 아랫도리에 땀이 차서,
옷 매무새를 다시 가다듬으며, 일어났다 다시 앉았다.
이런 공기순환이 잘 되지않는 의자는 싫다고 분명히 내색했음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아는지 모르는지, 언제나 그저 멋쩍은 듯이 웃을 뿐이었다.
어쩌면 나도 그 멋쩍은 웃음을 보고 싶어서,
네가 언제나 잡던 이 카페에 대해 푸념을 할지언정,
이 곳이 "절대" 안 된다는 그런 말은 꺼낸 적은 없었다.
어쩌면, 그건 내가 그만큼 그 아이를 사랑해서, 좋아해서 그랬다기보다는,
괜히 내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우리 관계를 압박하거나,
지켜야할 예의같은 것들로 우리의 만남을 무겁게 만들고 싶지않다는 뜻에서 그랬다는 생각이 이 시점에서 든다.
뭐 그게 그건가...상관없다.
어느 덧, 배려라고 인식했던 감정을 이젠 이해관계로 해석하려는
내 자신을 보고 있는 것 같아 입가에 어느새 씁쓸한 미소가 머문다.
언제나처럼 헤어짐을 준비하는 단계에서는 놀랍게도 차가워지는구나.
사랑의 시작점에서는 언제나 감성주의자였지만,
헤어짐의 끝에 가서는 갖은 이유를 다 만들어내는 이성주의자로 변모하는 내 모습은 익숙하면서도 부끄럽다.
어차피, 오래 만날 생각 아니었으니까...
이 말을 읊조리며
입가에 조소가 어리지만, 그만큼 마음은 어딘가 쓰리다.
양심의 가책 탓이겠지.
조금있으면 이성으로 뒤덮여질, 현실이란 이름으로 다시 재구축될 양심의 가책.
하지만, 한켠으로 몹시 화가 난다. 내가 미안해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으니까.
이건 분명코 너의 외도 탓이니까.
놈의 그런 모습을 그렇게 보게될런지는 정말 몰랐다.
별일아닌 다툼이라 생각했는데, 어느 새, 길어져버린 대화단절의 시간 속에서,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에, 회사동료와 함께한 2차 뒤풀이,
그것도 단 한번도 찾아간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남영동 굴다리에서,
언젠가의 내가 수신자였을 그 스킨쉽을 3자의 입장에서 감상하게 될런지는 정말 몰랐다.
상대방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는 없었지만, 아마 여대생이겠지.
이 근처에 여대가 있기도 하고, 전에 네가 말했듯이 그런 사람이 네 신체리듬과 어울리니까.
사실, 자연스럽다.
무언가를 획득하기 위해, 모자라는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 시작하는 사랑이 아니던가.
우리와의 관계에서 무언가가 모자랐기에 네가 그런 게 아닐까.
나와의 관계에서 그런 걸 획득할 수 없는데,
네가 다른 곳에서 그걸 얻을 수 있다면, 당연한 일이다.
자연의 섭리고, 뭐 그렇다....
지금 생각만 해도 눈시울이 벌개지고 목은 메이고.. 도무지 마음으로는 안 받아들여지는 일이긴 하지만,
그런 거다. 세상사는 게, 아니라.,이 곳이란게 원래 그런거다. 인간도 뭐 동물이고... 그렇다.
.........
사랑했나. 안 했나.
이 시점에서 그런 게 중요할까.
사실, 다른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된 게 큰 충격도 아니었다.
나도 나이 먹을만큼 먹었고, 굳이 세월의 흔적을 겪지 않았더라도,
인터넷 게시판만 보아도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아픈 점들을 경고해오고 있다.
TV도 잡지도, 모두 그런 이야기들만 하는데, 나라고 뭐가 대단할까.
내가 겪은 일이 뭐가 그리 대단할 일일까.
그만 하자. 그만 생각하자.
지나친 합리화다. 생각하면 할수록 나만 초라해지고 힘들어진다고 되뇌이지만,
어디에서도 위로받을 곳은 없다. 원망할 곳이 없어서,...
내가 누굴 원망할까.
잦은 격무에 시달리게끔 한 회사를 원망할까?
이것이 커리어의 발판이라며, 여자다움을 기꺼이 반납하겠다던 내 자신을 원망할까?
아니면, 믿음과 신뢰가 관계의 솔루션이라고 주장하던 내 떠벌임을 욕할까.
정말 그러고 싶지 않지만, 속좁게 나와의 관계에서 지쳐 다른 사람을 만난 너를 원망해야할까...
어디에도 토로할 것이 없다.
혹시나 이 만남을 부수어버릴까 겁이나 털어놓지 못한 나의 가족,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해봤자,
다들 날 '거봐, 내 말이 맞지'하며 의기양양한 말투로,
내 가슴을 허물어버릴 것같아, 결국 그들이 원하는 어떤 모습으로 날 만들어버릴 것같아,
마음을 금세 닫아버리고 잠글 뿐이다.
그저, 화려한 싱글이나 쓸쓸한 노처녀로 돌아갈 뿐이다.
이미 준비는 끝마쳤다. 이번 주말에는 엄마가 이제껏 그렇게 보라던 선 자리를 나가기로 했고,
날씨라던가, 식사라던가 문자로 끊임없이 나를 챙기던 그 털많던 아저씨의 문자메세지에도
예의상의 답장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난 여기서 이 일만 처리하면, 곧 날개를 다시 달고 일어서면 되는거다.
그저 과정이고, 언제나처럼 씩씩하게 딛고 일어서는 내겐 그저 영광만이 도래할 뿐이다!!!
창밖으로 네 차의 헤드라잇이 보인다.
언제나 늦지는 않지만, 항상 나보다 늦는 네 차의 앞부분은 왠지 모르게 반갑다.
하지만, 내가 선물한 전화번호 안내판이 어느덧 뜯어져있는 걸 보고 있자니,
오늘 일, 역시 현실임을 파악하고 있자니, 마음이...우그러든다. 짓이겨놓은 맥주깡통처럼.
이젠 이별해야 한다.
내가 먼저 입을 열어야 한다.
마치 서부목장 안의 총잡이가 된 느낌이다.
그 아이도 오늘 같은 생각으로 이 자리를 나오는 걸텐데,
누가 먼저 뽑느냐, 누가 이 관계를 끝내느냐가 누가 가해자인가를 판가름짓는 순간인 것같아, 괴롭지만,
하지만, 이렇게 보내주는 게, 그 이한테는 더 편하고,
내게 있어 너의 죄책감을 덜어줄 수 있는, 내 사랑, 아니 배려의 마지막의 찰나라고 생각하며,
다시 한번 입을 앙당 문다. 입술을 살짝 조근조근 씹어본다. 마음을 다잡는다.
그 아이가 걸어온다.
빛을 등지고 걸어오는 모습은 여전히 내 마음을 들뜨게한다.
곧 난 "왔어?"란 말을 미소와 함께 들뜬 마음을 감추려고 하겠지. 언제나처럼.
하지만, 이미 결과는 돌이켜질 수 없다. 이미 끝난 일이고, 이건 형식적인 절차일뿐이야.
살짝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의자 한 귀퉁이에 앉는 널 보고 있자니,
이제껏 연습하고, 다잡던 내 마음이 다 새하야진다.
어떻게 말을 해야할까?
그 질문을 다시 바꾸어 되묻고 싶어졌다.
왜 그 말을 해야할까? 왜 내가 해야하지?
왜 내가 그 말을 해야만 하는거야?
sous aucun pretexte,
je ne veux avoir de reflexes,
malheureux il faut que tu m'expliques,
un peu mieux comment te dire adieu
어떠한 사정이 있더라도 결코 난 불행한 반응은 보이고싶지 않아
넌 내게 좀 더 잘 설명해주어야 해
어떻게 네게 안녕이라 말해야하는지 말야
mon coeur de silex vite prend feu
ton coeur de pyrex resiste au feu
je suis bien perplexe,
je ne veux me resoudre aux adieus
je sais bien qu'un ex amour n'a pas de chance, ou si peu
mais pour moi un explication voudrait mieux
부싯돌 같은 내 마음은 빨리 불붙고,
내열유리같은 네 마음을 가진 불이 붙지 않지.
난 몹시 당황스러워.
난 헤어지고 싶은 마음이 없어.
이전의 사랑은 기회가 없거나, 아주 조금밖에 없다는 것을 난 잘알아.
그래도 나로서는 설명을 바랄 뿐.
sous aucun pretexte
je ne veux devant toi surexposer mes yeux derriere un kleenex
je saurais mieux comment te dire adieu comment te dire adieu
어떠한 사정이 있더라도 결코 난 네 앞에서
클리넥스로 눈물을 훔치고 있는 모습을 그렇게 드러내고 싶지 않아
어떻게 네게 안녕이라 말할지, 더 잘 알게 되겠지
tu as mis a l'index nos nuits blanches, nos matins gris-bleu
mais pour moi un explication voudrait mieux
너는 우리가 지샌 밤들과
우리가 맞이하던 푸르스름한 새벽녘을 무시해버렸지
그래도 나로서는 설명을 해줬음 좋겠어.
sous aucun pretexte,
je ne veux devant toi surexposer mes yeux derriere un kleenex
je saurais mieux comment te dire adieu
comment te dire adieu comment te dire adieu
어떠한 사정이 있더라도 결코 난 네 앞에서
클리넥스로 눈물을 훔치고 있는 모습을 그렇게 드러내고 싶지 않아
어떻게 네게 안녕이라 말할지, 더 잘 알게 되겠지
어떻게 네게 안녕이라 말할지, 더 잘 알게 되겠지
그동안, 글이 굉장히 적고 싶었는데, 도무지 시간이 나지 않았어요.
조금은 널널해진 일요일이고 해서 한번 적어봅니다.
sergio gainsbourg의 명곡, comment te dire adieu를 처음 들었을 때는,
가사가 다 파악이 되지않고 제목만 알 수 있어서,
"너한테 안녕이란 말을 어떻게 해야할까"란 뜻에서, "역시 프랑스인이야.
이런 바람둥이 입장의 이야기도 잘도 쓰는구나."란 삐딱한 보수적인 시각을 드러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그 가사를 접하면서,
'아. 상대방의 차가움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면서,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고자하는 입장에서,
안녕이란 말을 하려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구나"란 생각에 그 동안의 제 좁은 시각을 원망했죠.
너무 오랫만에 글을 지어내서 뭐 써질까 했는데, 여차저차 써지네요. :)
근데, 30대 총각이, 30대 처녀의 마음씀씀이까지 파악하는 건 굉장히 자신이 없네요.
어쩌면 30대 처녀들은 이 글을 보며 깔깔거리고 있지않을까하는 심산이...:)
이 곡은 Rossini가 작곡한 노래로써, 제목을 한국말로 번역하자면 '고양이 이중창'입니다.
사실, 일반적으로 알려져있기로는 Rossini입니다만,
기록에 의해서는 1816년 오페라, 오델로에서 연주된 것을
1825년, "G. Berthold"라는 필명의 영국작곡가 "Robert Lucas de Pearsall"이 편찬한 것이
문서로 남아있는 최초의 기록이라고 하네요.
이 곡의 탄생배경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숨어있는데,
여기에서는 Rossini를 이 곡의 작곡가로 전제하고 있더군요.
일단 그 전제를 받아들이기로 하고 그가 영감을 받은 사건을 이야기하자면, 이렇습니다.
예전 16세기에 어릿광대들이 이상한 연주회를 연출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상자 안에 10-12마리의 고양이를 넣고 고양이수만큼 그 구멍을 뚫어 꼬리를 내어놓게하여,
일종의 오케스트라를 형성한 뒤, 지휘자 역의 광대가 '세게'또는 '약하게' 꼬리를 잡아당겨,
고양이들이 야옹거리는 소리를 내도록 하는 쇼였다고 합니다.
이런 쇼들은 굉장히 인기가 있어 많은 관중을 불러들이기도 했는데,
17세기까지 굉장히 흥행하는 쇼의 레퍼토리로 자리잡힐 정도였다고 하는데요.
이 쇼는 Rossini뿐만 아니라, 스카를라티, 모짜르트, 오펜바흐에게도 영감을 주어,
몇몇 곡들의 발단이 되었다고 합니다.
위 영상은 파리십자나무합창단이 예전 서울에 내한했을 때, 연주한 것입니다
둘 중 우측 친구가 기가 막힐 정도의 '고양이 흉내'로 추임새를 넣네요,
이거 중독성이 있는데요....자꾸 따라하게 되네요. :)
제가 20년만 젊었다면 도전 정도는 해봤을텐데,
지금의 제 나이로는 더욱 우스꽝스러워질 것 같아서,
하는 도중에 스스로 배잡고 뒹굴것 같아서, 욕심을 접어버릴랍니다.
Clue : 이렇게 중후한 목소리도,...이 곡 앞에선 무용지물.
하지만, 더욱 하고 싶어지는 건 사실이네요. :)
To rimcat.
누님, 이거 개인 레퍼토리로 강력추천합니다.
묘상에 노래실력, 매치, 딱이지 않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