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9. 7. 23:53
Review/음악에 관한
"나영이, 너 일루와서 좀 앉아봐."
내 이럴 줄 알았다.
일요일 아침이라, 어제 친구들이랑 달린다고 집에서 일찍 나가지않은게 실수였다.
수더분한 머리, 신경질적으로 벅벅 긁는 걸로 반항심을 표현하고 그 앞에 앉는다.
대답이야. 똑같지.
"아~왜!"
어머니도 이런 반응에는 이젠 익숙해진 것 같다. 이런 도발에도 전혀 제동이 걸리지않거든.
"야, 지지배야.
무슨 술을 그렇게 먹고 다니니?
너 얹저녁에 어떻게 들어왔는지 알아.
나 살다 살다, 그 뭐냐, 응 그래, 그 링의 주인공이 티브이가 아니라 현관문에서 나오는 거 처음 봤다.
야, 너 어제 기어 들어왔어, 알어! 기어서 왔다고!,
허이구, 엘레베이터 CCTV 아주 가관이었겠네,
동네 망신스러워서 어떻게 살래? 경비원 아저씨는 또 어떻게 볼 꺼냐고?"
아, 그래서 무릎이 욱신욱신했던 거였구나.
그래서, 아침에 일어났을 때, 힐을 잡고 있었던 이유가 그거 때문이었구나.
솔직히 예사롭지도 않은 일이다. 그러니까 받아치는 것도 언제나 일상적으로,
"아, 엄마, 그럴 수도 있지~, 사회생활 하다보면, 뭐 힘들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고, 그런 거 아냐?
박말복 여사. 집안에만 계셔서 스트레스 받을 일이 공교롭게도 나와 다르신가 본데, 이래뵈도,
과장님이라고, 나~, 팀원들이랑 사이가 안 좋아서 조금 치고 받을 수도 있는 거지~
박말복 여사는 돈 버는 게 쉬운지 아는감? 관리비 버는 것도 쉬운 게 아니여~"
아빠 흉내를 내며 분위기를 화사하게 바뀌어보도록 노력한다.
엄마, 한참을 쳐다보다가 몇 대 친다.
"야! 야!
어우, 그러셔~ 그래서, 미니스커트 입고 사회생활 하셔?
야, 니가 무슨 술집 다니냐? 미니스커트 입고 사회생활하게?
아주, 기가 차서 웃기지도 않다. 아주 사회생활 하는게 벼슬이라고 부모한테 콧대 세우는 꼴이...
너 한번만 더 관리비 내가 낸다, 어쩌고 이야기 한번만 더 해봐!
아주 이제까지 키운 값 다 돌려받을테니까!
허이구, 언제 철들래? 참 늙으막에 애 다 키우고 손주, 손녀 보는 재미로 살아가는 친구들이 주변에 천지인데,
난 전생에 뭔 죄를 지어서 이렇게 과년한 딸년이랑 일요일을 이렇게 치고받고 해야하는 건지 모르겠다.
으이구 속터진다! 속터져~!"
"왜 때려~"하고 씩씩하는 와중에 괜히 아버지가 원망스럽다.
아빠는 왜 산악회를 혼자 활동하시는가.
엄마는 걱정도 안되나? 산악회가 중년 볼륜의 메카라는데,
딸에게 갖는 이런 관심, 그 쪽으로 뻗으시면 가정사가 더 안전하고 견고해질 요량이 더 크거늘.
자그마한 딸의 흉을 지적하시는 것보다는 그게 100배 더 나은데. 흥.
근데, 그러고보니, 슬슬 불안해진다. 그러고 보니, 마지막에 나온 말이...
"말 나와서 말인데,..."
안 돼, 제발, 엄마, 일요일이란 말야.
"너 언제,"
아, 역시, 저거구나.
술먹고 기어들어왔다한들 도무지 수그려들지않고,
오히려 당당함과 자신감이 무르익은 도도함의 콧날이,
자라목처럼 움츠려든다.
"결혼할 꺼냐?"
아직이다. 이어 나올 말이 남았지.
"할 생각은 있는거냐?"
....솔직히, 이 상황에 대해서 내가 잘못한 건 없다.
혼자 살 능력이 있다면 굳이 시집가야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하고,
난 그 정도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게다가 이 가정에 자그나마하나 중대한 관리비도 대신 내주며 부양하는 시점이 아닌가.
내가 결혼을 안 하는 건, 일과 인생을 즐기기 위함이지,
무언가 모자람이 있어서 안 하는 건 전혀 아니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꼭 결혼이라걸 해야만 정상으로서 입증해내는 것도 아니고,...
당당한 싱글, 화려한 싱글, 얼마나 멋진가!
자, 이 사고를 토대로 어머니께 멋지게 반론하고, 설득시키자!...
하지만. 내 입에선 언제나 그렇듯이,
"엄마! 내가 좀 알아서 할께! 이제껏 알아서 잘 했구만, 뭐가 걱정이야!" 로 돌려막을 뿐이다.
생각은 항상 그 프랑스 독립의 여신처럼 당당한데, 엄마 앞에서 그런 말을 도저히 못하겠다.
"아직도 철들려면 한참 멀었네..."소리 듣는 게 겁이 나서 그러나?
"야 내가 말했지? 너 백마띠라 선 물어오기도 가당찮아.
아버지 환갑 지났고 엄마도 몇달있음 역시 환갑이야.
더 늦기 전에, 결혼해야, 아버지 말씀대로 칠순 전에 손주, 손녀 볼꺼 아니겠냐.
이제껏 불효한 거, 그거 한방으로 다 퉁해줄테니,
돌아가시기 전에 효도 한번 한다 생각하고,
그 높디 높은 눈 더 낮춰서 시집 좀 가. 제발. 응? 엄마 소원이다.
괜히 어젯밤처럼 은자같은 애들이랑 술이나 마시지말고, 응?"
불편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언제나 내가 불효녀인것만 같다. 괜히.
"엄만, 괜히 뜬금없이 은자한테 그래?"
외마디 소리 지르듯이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감정을 숨긴다.
이상하게 괜시리 미안한 감정이 풍겨져간다.
결혼에 대한 마음이 전혀 없다는 게 죄책감으로 번져간다는 거,
머리로서는 이해가 안 가는데,
감정으로서는 이 마음을 어디엔가에 파묻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창피하고 죄송하다.
눈물이고 술이고 모든게 마음안에서 분출되어버릴 것 같다.
하지만, 집안에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세면도구들을 챙긴다.
아무래도 눈에서 그런 것들을 뽑아내는 건, 무엇에 대한 증명인 것 같아.
그것도 내가 인정하고 싶지않은, 아니 할 수 없는 그런 증명들을 마주하고 싶지않은 마음에,
그것들을 땀으로 뽑아내고자 찜질방을 가기로 결정한다.
현관문을 밀면서, 지금 내 모습이 '도망치는' 형국인 것 같아 잠시 망설이지만,
집안에 있는다는 건 도무지 견뎌낼 수 없는 어떤 것이기에 주저없이 문을 열어제친다.
'씻고 찜질 좀 하다가 12시에 달걀 까먹으면서 출발비디오여행이나 봐야지'하며 마음먹으며,
CCTV를 통해 새벽 엘레베이터의 장관을 끌끌대며 감상하실 경비아저씨는 이미 퇴근하고 없을텐데,
괜시리 야구모자를 깊게 눌러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