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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e to face"
john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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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8. 3. 17:53 Review/음악에 관한


"야, 왜 사람을 불러놓고 멍해있어?"

친근하면서도 날카로운 목소리로 내 뒷목덜미를 어루만지듯 가로챈다.

"어? 미안해, 언니, 요즘 안 하던 운동 하다보니까, 요새 자꾸 이러네,
잠이 모자라서인지 좀 멍해있는 구석이 좀 있다."

"그래, 그 안하던 운동 탓이겠지."

싫다. 시선을 다른 곳에 두면서 비아냥거리는 거.
그리고 두렵다, 다음에 쏟아낼 그 잔소리들이,..
입술을 샐쭉 내보이지만, 언니는 벌써 기다렸던 것 같다.

"아니, 그러게, 내가 뭐랬니?
그러니까. 몸뚱아리 보고 함부로 만나는 거 아니랬지?
이게 젊으니까,...아주 정신 놓고,....
뭐, 몸뚱아리 가니까 마음도 걷잡을 수가 없다는 남사스런 이야기나 하더니,
헤어진 사유로 "너보다 어리니까 마음간다"는 이야기나 듣고 와서,
마음 삭힐려고 한다는 게, 그래, 평생 안 하던 운동이니?

왜? 운동으로 회춘하게?
운동하면 늘어지는 볼살이 어느새 탱탱해지고, 주름이 펴진다니?
거울 좀 봐. 너 얼굴 완전 상했어.
회사 일이 바빠서 잠도 하루 6시간 못 자는 애가. 이를 악물면서
요가에 나이트댄스, 게다가 잘 때는 그 진동복근기계까지....아주 웃기지도 않아.
처음에 헤어진 이야기 들었을 때, 
그런 거 당당하게 말하고 헤어지는 걔도 참 대단하다 싶었는데,
널 보고 있자니,....참 할말이 없다. 정말....
야, 김나영! 정신 좀 챙기지? 응?"

성격이야 별 수 없다.
저 양반이야 안에 못 담고 내어놓는 스타일이고,
나는 받은 걸 못 삭히면 안 되는 스타일이고,

사실 내 자신에게 수도 없이 건네던 이야기, 언니의 입을 통해 들은 거에 불과한데,
기관포 쏘아대듯한 잔소리를 마냥 듣고 있자니,
내 눈시울이 분함으로 젖어들고,
목소리도 금세 안타까움에 갈라져가는 것 같다.
내 감정, 비어있는 마음, 메마른 정서같은 모습 보이기 싫어서 이런 생활을 하는 건데,...

그래도, 언니는 언니다.
멈춰야할 때만큼은 확실하게 아니까,
브레이크 라인이 눈매에 그려져있다.

그래도 어느 정도 맺혀져있는 눈의 그림자를 들키고 싶지않아.
고개를 돌려 쇼윈도 바깥쪽을 바라본다.
비가 와서, 쇼윈도 표면이 씻겨져 내려간다.
다행이다. 모든게 흐릿하게 보여서,
나 외에 다른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가 없어서,

"언니,"

"응?"

"운동,..지겹네, 언니 말 맞나보다. 나 하나만 할까봐,"

아, 고맙다.
비록 눈매는 미안함에 흐트러져있지만 말없이 미소 지어주는 저 모습이,
백마디 말보다도, 더 진심을 느끼게 해주는 진한 위로가 느껴진다.
괜시리 눈자위가 욱신욱신해서, 빗줄기가 흘러 내리는 쇼윈도로 고개를 돌린다.

"....언니 비오니까 참 마음이 심숭생숭하다."

".....야, 걱정마라. 저게 다 남자라니까?
남자와의 인연이란게 다 빗줄기같은 거야, 
어떤건 스며들고 어떤 건 주르륵 흘러내려 바닥으로 떨어질.
그리고 또 다시 반복될,..그런 거야.
연애 한두번 해본 것도 아닌 애가 헤어지기만 하면, 꼭 이런 걸 잊더라.
네 심성이야 조선시대 돌아가도 정실부인할 정도의 지고지순한 건 잘 알겠는데,
어떻게 스며들 빗줄기랑, 흘러내릴 빗줄기 구분을 못하니?"

다시 시작되는 잔소리.
받아쳐야지, 받아쳐야 즐겁고 기분도 더 나아질텐데. 힘이 없다.
그래도, 혼자 있는 집에서는 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보는 게
마치 나를 옭아매는 창살이 내리는 것 같아 견디기 어려웠는데,
언니라도 있으니 지금 쇼윈도를 타고 내리는 빗줄기가
마치 날 감싸는 투명한 커튼같아 조금은 포근한 느낌마저 든다.
눈이 살살 감기면서 멀어지는 언니의 잔소리,
모든 게 다 흐릿해져가지만. 지금의 이 상황은 이겨낼 수 있을 것같다는 확신이 안개처럼 드리운다.

그래, 이번만 날이냐. 내려라 남자야.

posted by johnj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