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Face to face"
johnjung

Recent Post

Recent Comment

Recent Trackback

Archive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total
  • today
  • yesterday

'단편'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0.05.16 Comment te dire adieu - Francoise hardy 2
2010. 5. 16. 15:01 Review/음악에 관한




일어났다 다시 앉았다.
치마를 입었음에도 자꾸 아랫도리에 땀이 차서,
옷 매무새를 다시 가다듬으며, 일어났다 다시 앉았다.

이런 공기순환이 잘 되지않는 의자는 싫다고 분명히 내색했음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아는지 모르는지, 언제나 그저 멋쩍은 듯이 웃을 뿐이었다.
어쩌면 나도 그 멋쩍은 웃음을 보고 싶어서,
네가 언제나 잡던 이 카페에 대해 푸념을 할지언정, 
이 곳이 "절대" 안 된다는 그런 말은 꺼낸 적은 없었다.

어쩌면, 그건 내가 그만큼 그 아이를 사랑해서, 좋아해서 그랬다기보다는,
괜히 내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우리 관계를 압박하거나,
지켜야할 예의같은 것들로 우리의 만남을 무겁게 만들고 싶지않다는 뜻에서 그랬다는 생각이 이 시점에서 든다.

뭐 그게 그건가...상관없다.
어느 덧, 배려라고 인식했던 감정을 이젠 이해관계로 해석하려는
내 자신을 보고 있는 것 같아 입가에 어느새 씁쓸한 미소가 머문다.
언제나처럼 헤어짐을 준비하는 단계에서는 놀랍게도 차가워지는구나.
사랑의 시작점에서는 언제나 감성주의자였지만,
헤어짐의 끝에 가서는 갖은 이유를 다 만들어내는 이성주의자로 변모하는 내 모습은 익숙하면서도 부끄럽다.

어차피, 오래 만날 생각 아니었으니까...

이 말을 읊조리며
입가에 조소가 어리지만, 그만큼 마음은 어딘가 쓰리다.
양심의 가책 탓이겠지.
조금있으면 이성으로 뒤덮여질, 현실이란 이름으로 다시 재구축될 양심의 가책.

하지만, 한켠으로 몹시 화가 난다. 내가 미안해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으니까.
이건 분명코 너의 외도 탓이니까.

놈의 그런 모습을 그렇게 보게될런지는 정말 몰랐다.
별일아닌 다툼이라 생각했는데, 어느 새, 길어져버린 대화단절의 시간 속에서,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에, 회사동료와 함께한 2차 뒤풀이,
그것도 단 한번도 찾아간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남영동 굴다리에서,
언젠가의 내가 수신자였을 그 스킨쉽을 3자의 입장에서 감상하게 될런지는 정말 몰랐다.

상대방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는 없었지만, 아마 여대생이겠지.
이 근처에 여대가 있기도 하고, 전에 네가 말했듯이 그런 사람이 네 신체리듬과 어울리니까.
사실, 자연스럽다.
무언가를 획득하기 위해, 모자라는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 시작하는 사랑이 아니던가.
우리와의 관계에서 무언가가 모자랐기에 네가 그런 게 아닐까.
나와의 관계에서 그런 걸 획득할 수 없는데,
네가 다른 곳에서 그걸 얻을 수 있다면, 당연한 일이다.
자연의 섭리고, 뭐 그렇다....
지금 생각만 해도 눈시울이 벌개지고 목은 메이고.. 도무지 마음으로는 안 받아들여지는 일이긴 하지만,
그런 거다. 세상사는 게, 아니라.,이 곳이란게 원래 그런거다. 인간도 뭐 동물이고... 그렇다.

.........

사랑했나. 안 했나.
이 시점에서 그런 게 중요할까.

사실, 다른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된 게 큰 충격도 아니었다.
나도 나이 먹을만큼 먹었고, 굳이 세월의 흔적을 겪지 않았더라도,
인터넷 게시판만 보아도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아픈 점들을 경고해오고 있다.
TV도 잡지도, 모두 그런 이야기들만 하는데, 나라고 뭐가 대단할까.
내가 겪은 일이 뭐가 그리 대단할 일일까.

그만 하자. 그만 생각하자.
지나친 합리화다. 생각하면 할수록 나만 초라해지고 힘들어진다고 되뇌이지만,
어디에서도 위로받을 곳은 없다. 원망할 곳이 없어서,...

내가 누굴 원망할까.
잦은 격무에 시달리게끔 한 회사를 원망할까?
이것이 커리어의 발판이라며, 여자다움을 기꺼이 반납하겠다던 내 자신을 원망할까?
아니면, 믿음과 신뢰가 관계의 솔루션이라고 주장하던 내 떠벌임을 욕할까.
정말 그러고 싶지 않지만, 속좁게 나와의 관계에서 지쳐 다른 사람을 만난 너를 원망해야할까...

어디에도 토로할 것이 없다.

혹시나 이 만남을 부수어버릴까 겁이나 털어놓지 못한 나의 가족,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해봤자,
 다들 날 '거봐, 내 말이 맞지'하며 의기양양한 말투로,
내 가슴을 허물어버릴 것같아, 결국 그들이 원하는 어떤 모습으로 날 만들어버릴 것같아,
마음을 금세 닫아버리고 잠글 뿐이다.

그저, 화려한 싱글이나 쓸쓸한 노처녀로 돌아갈 뿐이다.
이미 준비는 끝마쳤다. 이번 주말에는 엄마가 이제껏 그렇게 보라던 선 자리를 나가기로 했고,
날씨라던가, 식사라던가 문자로 끊임없이 나를 챙기던 그 털많던 아저씨의 문자메세지에도
예의상의 답장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난 여기서 이 일만 처리하면, 곧 날개를 다시 달고 일어서면 되는거다.
그저 과정이고, 언제나처럼 씩씩하게 딛고 일어서는 내겐 그저 영광만이 도래할 뿐이다!!!

창밖으로 네 차의 헤드라잇이 보인다.
언제나 늦지는 않지만, 항상 나보다 늦는 네 차의 앞부분은 왠지 모르게 반갑다.
하지만, 내가 선물한 전화번호 안내판이 어느덧 뜯어져있는 걸 보고 있자니,
오늘 일, 역시 현실임을 파악하고 있자니, 마음이...우그러든다. 짓이겨놓은 맥주깡통처럼.

이젠 이별해야 한다.
내가 먼저 입을 열어야 한다.
마치 서부목장 안의 총잡이가 된 느낌이다.

그 아이도 오늘 같은 생각으로 이 자리를 나오는 걸텐데,
누가 먼저 뽑느냐, 누가 이 관계를 끝내느냐가 누가 가해자인가를 판가름짓는 순간인 것같아, 괴롭지만,
하지만, 이렇게 보내주는 게, 그 이한테는 더 편하고,
내게 있어 너의 죄책감을 덜어줄 수 있는, 내 사랑, 아니 배려의 마지막의 찰나라고 생각하며,
다시 한번 입을 앙당 문다. 입술을 살짝 조근조근 씹어본다. 마음을 다잡는다.

그 아이가 걸어온다.
빛을 등지고 걸어오는 모습은 여전히 내 마음을 들뜨게한다.
곧 난 "왔어?"란 말을 미소와 함께 들뜬 마음을 감추려고 하겠지. 언제나처럼.

하지만, 이미 결과는 돌이켜질 수 없다. 이미 끝난 일이고, 이건 형식적인 절차일뿐이야.

살짝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의자 한 귀퉁이에 앉는 널 보고 있자니,
이제껏 연습하고, 다잡던 내 마음이 다 새하야진다.

어떻게 말을 해야할까?

그 질문을 다시 바꾸어 되묻고 싶어졌다.

왜 그 말을 해야할까? 왜 내가 해야하지?
왜 내가 그 말을 해야만 하는거야?


 

posted by johnjung